종교7세기 후반
원효의 불교 대중화
원효가 일심·화쟁 사상을 펴고, "나무아미타불"만 외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아미타 신앙으로 불교를 백성에게 넓혔다.

Alain Seguin · CC BY-SA 3.0 · 원본
원효는 661년 의상과 함께 당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밤에 무덤 속에서 마신 물이 해골에 고인 물이었음을 알고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일체유심조)"는 깨달음을 얻어 돌아왔다고 전한다. 그는 모든 것이 한마음(일심)에서 나온다는 일심 사상과, 여러 종파의 다툼을 더 높은 차원에서 어우르는 화쟁 사상을 폈다. 대승기신론소·금강삼매경론·십문화쟁론을 썼다.
원효는 경전을 몰라도 "나무아미타불"만 외면 서방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아미타 신앙(정토 신앙)을 가르치고, 무애가를 부르며 마을을 돌아다녀 불교를 귀족의 종교에서 백성의 종교로 넓혔다. 요석 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