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철
다른 이름: 나인영, 홍암
을사늑약 뒤 오기호와 을사오적 암살을 꾀했다. 1909년 단군을 받드는 대종교를 열었다
1907년 오기호 등과 자신회를 만들어 을사오적을 죽이려 했으나 실패해 유배되었다. 1909년 단군을 섬기는 단군교를 열었고 이듬해 대종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종교는 만주에서 중광단·북로 군정서 같은 무장 독립운동의 바탕이 되었다.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16년 구월산 삼성사에서 자결했다.
다른 이름: 나인영, 홍암
을사늑약 뒤 오기호와 을사오적 암살을 꾀했다. 1909년 단군을 받드는 대종교를 열었다
1907년 오기호 등과 자신회를 만들어 을사오적을 죽이려 했으나 실패해 유배되었다. 1909년 단군을 섬기는 단군교를 열었고 이듬해 대종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종교는 만주에서 중광단·북로 군정서 같은 무장 독립운동의 바탕이 되었다.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16년 구월산 삼성사에서 자결했다.
1905년 11월 17일, 이토 히로부미가 군대로 경운궁을 에워싸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조약을 강요했다. 통감부가 설치되어 내정까지 간섭했다.
천도교·대종교·불교·천주교·원불교·개신교 등 종교계가 계몽 운동, 무장 투쟁, 생활 개선 운동, 신사 참배 거부로 민족 운동에 나섰다.

한성 백제에서 6월 민주 항쟁까지 — 한강을 차지한 나라가 이긴 땅, 조선 500년의 도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