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간호를 배워, 크림 전쟁의 병원에서 등불을 들고 병사들을 돌보고, 통계로 위생을 바꾸고, 간호를 전문 직업으로 세운 사람의 일생

After Henrietta Rae · Public domain · 원본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간호를 배워, 크림 전쟁의 병원에서 등불을 들고 병사들을 돌보고, 통계로 위생을 바꾸고, 간호를 전문 직업으로 세운 사람의 일생

After Henrietta Rae · Public domain · 원본
간호사가 되는 것을 집안이 반대하던 나이팅게일이 독일 카이저스베르트의 간호 학원에서 석 달 동안 간호를 배웠다.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려던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과 싸우자 영국·프랑스·사르데냐가 오스만 편에 섰다. 러시아는 세바스토폴을 잃고 져서 남하 정책이 막혔다.
나이팅게일이 간호사 38명을 이끌고 크림 전쟁의 영국군 병원 스쿠타리에 왔다. 밤마다 등불을 들고 병실을 돈 그는 「등불을 든 여인」으로 불렸다.
나이팅게일이 크림 전쟁 병사들의 죽음을 원인별로 나눈 원 모양 그래프(장미 도표)를 만들어, 대부분이 막을 수 있는 병으로 죽었음을 한눈에 보였다.
런던 성 토머스 병원에 나이팅게일 간호 학교가 문을 열었다. 훈련받은 간호사를 길러 내는 근대 간호 교육의 시작이다.
나폴레옹 1세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 1848년 대통령에 뽑힌 뒤 쿠데타로 제2 제정을 열어 황제(1852–1870)가 되었으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물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