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의 암살
다른 이름: 마라의 죽음, 마라 암살
지롱드파를 지지한 샤를로트 코르데가 욕조에 있던 마라를 찔러 죽였다.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 그를 혁명의 순교자로 만들었다.

Jacques-Louis David · Public domain · 원본
피부병 때문에 약을 탄 욕조에 앉아 일하던 마라는 신문 「인민의 벗」으로 지롱드파 축출을 부추긴 급진파의 상징이었다. 1793년 6월 지롱드파 의원들이 쫓겨난 뒤, 노르망디 캉에서 그들을 지지하던 25세의 샤를로트 코르데는 파리로 올라왔다. 7월 13일 저녁 그녀는 반역자의 이름을 알려 주겠다며 마라의 집에 들어가 욕조의 그를 칼로 찔러 죽였다.
코르데는 그 자리에서 붙잡혀 7월 17일 처형되었다. 산악파는 마라를 혁명의 순교자로 받들었고, 다비드는 장례를 연출하고 「마라의 죽음」을 그려 국민 공회에 바쳤다. 암살은 오히려 지롱드파에 대한 탄압과 공포 정치를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