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793년 7월 13일

마라의 암살

다른 이름: 마라의 죽음, 마라 암살

지롱드파를 지지한 샤를로트 코르데가 욕조에 있던 마라를 찔러 죽였다.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 그를 혁명의 순교자로 만들었다.

마라의 죽음 — 자크루이 다비드, 1793년, 벨기에 왕립 미술관(브뤼셀)
마라의 죽음 — 자크루이 다비드, 1793년, 벨기에 왕립 미술관(브뤼셀)

Jacques-Louis David · Public domain · 원본

피부병 때문에 약을 탄 욕조에 앉아 일하던 마라는 신문 「인민의 벗」으로 지롱드파 축출을 부추긴 급진파의 상징이었다. 1793년 6월 지롱드파 의원들이 쫓겨난 뒤, 노르망디 캉에서 그들을 지지하던 25세의 샤를로트 코르데는 파리로 올라왔다. 7월 13일 저녁 그녀는 반역자의 이름을 알려 주겠다며 마라의 집에 들어가 욕조의 그를 칼로 찔러 죽였다.

코르데는 그 자리에서 붙잡혀 7월 17일 처형되었다. 산악파는 마라를 혁명의 순교자로 받들었고, 다비드는 장례를 연출하고 「마라의 죽음」을 그려 국민 공회에 바쳤다. 암살은 오히려 지롱드파에 대한 탄압과 공포 정치를 굳혔다.

지도에서 보기

1793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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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프랑스
관련 장소
파리

관련 인물

  • 장폴 마라1743년 – 1793년

    관련자 · 의사 출신 언론인·국민 공회 의원. 신문 「인민의 벗」으로 급진 혁명을 부추겼고, 1793년 샤를로트 코르데에게 암살되었다

  • 샤를로트 코르데1768년 – 1793년

    핵심 인물 · 노르망디 출신의 지롱드파 지지자. 1793년 7월 13일 파리에서 마라를 찔러 죽이고 나흘 뒤 처형되었다

  • 자크루이 다비드1748년 – 1825년

    관련자 · 신고전주의 화가·국민 공회 의원. 「테니스코트의 서약」「마라의 죽음」을 그리고 혁명 축제를 연출했으며, 뒤에 나폴레옹의 궁정 화가가 되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793년 방데 반란

이 사건이 든 테마

  • 프랑스 혁명1787년 – 1799년

    명사회와 삼부회에서 브뤼메르 18일 쿠데타까지 —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운 뒤 공포 정치와 반동을 거쳐 나폴레옹에게 이른 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