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793년 9월 5일 – 1794년 7월 27일

공안 위원회와 공포 정치

다른 이름: 공포 정치, 공안 위원회, 혐의자법, 자코뱅 독재

안팎의 위기 속에 공안 위원회가 「공포를 일상의 질서로」 삼아 혐의자를 잡아들였다. 1만 7천여 명이 공식 처형되었다.

혁명 재판소에서 기소장을 듣는 브리소와 지롱드파 의원들 — 작자 미상 판화, 1793년
혁명 재판소에서 기소장을 듣는 브리소와 지롱드파 의원들 — 작자 미상 판화, 1793년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1793년 4월 국민 공회는 행정을 감독할 공안 위원회를 만들었고, 7월 로베스피에르가 들어가면서 위원회는 사실상 혁명 정부가 되었다. 외국 군대와 방데·리옹·마르세유의 반란에 몰린 공회는 8월 국민 총동원령을 내렸고, 9월 5일 파리 민중이 공회를 에워싸자 「공포를 일상의 질서로」 삼겠다고 결의했다. 9월 17일 혐의자법은 혁명의 적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재판 없이 가둘 수 있게 했다.

혁명 재판소는 10월 마리 앙투아네트와 지롱드파 의원들을, 이듬해 3월 에베르파, 4월 당통파까지 단두대에 보냈다. 1794년 6월 프레리알 법으로 변론과 증인 없이 재판할 수 있게 되자 처형은 더 빨라졌다. 공포 정치 동안 프랑스 전역에서 약 1만 7천 명이 공식 처형되었고, 감옥에서 죽거나 재판 없이 죽은 사람까지 합하면 3만 5천 명이 넘는다고 본다. 한편 최고 가격제로 생필품 값을 묶고 1794년 2월 식민지 노예제를 폐지했다.

지도에서 보기

1793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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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프랑스
관련 장소
파리, 콩시에르주리, 콩코르드 광장

관련 인물

  • 막시밀리앵 로베스피에르1758년 – 1794년

    핵심 인물 · 자코뱅파의 지도자. 공안 위원회를 이끌며 공포 정치를 펼쳤으나 1794년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처형되었다

  • 조르주 당통1759년 – 1794년

    관련자 · 혁명가·웅변가. 1792년 법무 장관으로 왕정 타도 뒤의 위기를 이끌었고, 공포 정치의 완화를 주장하다 1794년 처형되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793년 마라의 암살
이후 사건
1793년 마리 앙투아네트 처형

이 사건이 든 테마

  • 프랑스 혁명1787년 – 1799년

    명사회와 삼부회에서 브뤼메르 18일 쿠데타까지 —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운 뒤 공포 정치와 반동을 거쳐 나폴레옹에게 이른 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