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775년 6월 17일
벙커힐 전투
보스턴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진지를 쌓은 민병대를 영국군이 세 번 공격해 언덕을 빼앗았지만, 1천 명 넘게 죽거나 다쳤다.

Howard Pyle · Public domain · 원본
렉싱턴·콩코드 뒤 1만이 넘는 민병대가 보스턴을 둘러쌌다. 1775년 6월 16일 밤 민병대는 찰스타운 반도의 브리즈 언덕에 흙 보루를 쌓았다. 이튿날 영국군 약 2,200명이 배로 건너와 언덕을 올랐고, 탄약이 모자란 민병대는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쏘았다 — 「눈의 흰자위가 보일 때까지 쏘지 마라」는 말이 전하지만 누가 한 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두 번 물러난 영국군은 세 번째 공격에서 탄약이 떨어진 민병대를 몰아내고 언덕을 차지했다. 그러나 영국군은 1천 명 넘게 죽거나 다쳐 민병대(약 450명)보다 훨씬 큰 대가를 치렀다. 싸움은 근처의 벙커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틀 전 대륙 회의는 버지니아의 조지 워싱턴을 대륙군 총사령관으로 뽑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