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기원전 213 – 212년

분서갱유

다른 이름: 분서, 갱유, 焚書坑儒

기원전 213년 승상 이사의 건의로 진의 역사와 실용서를 뺀 책을 불태우고, 이듬해 진시황을 비방했다는 학자와 방사 460여 명을 함양에서 산 채로 묻었다고 전한다.

분서갱유 — 18세기 중국 화첩 「제감도설」의 그림
분서갱유 — 18세기 중국 화첩 「제감도설」의 그림

Unknown (18??–18??) · Public domain · 원본

기원전 213년 함양의 연회에서 한 박사가 옛 주의 봉건제를 본받아야 한다고 아뢰자, 승상 이사는 학자들이 옛것을 빌려 지금을 비난하며 민심을 어지럽힌다고 반박했다. 진시황은 이사의 건의대로 진의 역사가 아닌 사서, 민간이 가진 『시경』·『서경』과 제자백가의 책을 거두어 불태우게 했다. 의약·점복·농업 책은 남겼고, 배우려는 자는 관리를 스승으로 삼게 했다.

이듬해 불로장생의 약을 구하겠다던 방사 노생·후생 등이 진시황을 비난하고 달아나자, 진시황은 함양의 학자들을 조사해 460여 명을 산 채로 구덩이에 묻었다고 사마천은 적었다. 묻힌 사람의 상당수가 유학자보다 방사였다는 견해도 있다. 이를 말린 맏아들 부소는 몽염이 있는 북쪽 변경으로 쫓겨났다.

분서갱유는 법가에 따른 사상 통제의 상징이 되었고, 진의 가혹함을 말할 때 늘 첫손에 꼽혔다. 한 때에 숨겨 두었던 책과 학자들의 기억으로 경전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금문·고문 경학의 논쟁이 생겼다.

지도에서 보기

기원전 213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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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진
관련 장소
함양 (셴양)

관련 인물

  • 진시황기원전 259년 – 기원전 210년

    군주 · 진의 왕(기원전 247–221)이자 첫 황제(기원전 221–210). 여섯 나라를 멸망시켜 중국을 통일하고 황제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를 세웠다

  • 이사기원전 280년 – 기원전 208년

    핵심 인물 · 진의 승상. 법가 사상으로 진시황의 통일과 군현제·문자 통일을 도왔고 분서를 건의했다. 진시황이 죽은 뒤 조고와 유언을 고쳤으나 조고의 모함으로 처형되었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기원전 210년 진시황의 죽음과 사구의 변

이 사건이 든 테마

  • 고대 중국과 인도기원전 770년 – 220년

    춘추 전국의 제자백가에서 진·한의 통일 제국까지, 석가모니에서 마우리아·쿠샨 왕조까지 — 동아시아와 남아시아 문명의 틀이 잡힌 천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