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서갱유
다른 이름: 분서, 갱유, 焚書坑儒
기원전 213년 승상 이사의 건의로 진의 역사와 실용서를 뺀 책을 불태우고, 이듬해 진시황을 비방했다는 학자와 방사 460여 명을 함양에서 산 채로 묻었다고 전한다.

Unknown (18??–18??) · Public domain · 원본
기원전 213년 함양의 연회에서 한 박사가 옛 주의 봉건제를 본받아야 한다고 아뢰자, 승상 이사는 학자들이 옛것을 빌려 지금을 비난하며 민심을 어지럽힌다고 반박했다. 진시황은 이사의 건의대로 진의 역사가 아닌 사서, 민간이 가진 『시경』·『서경』과 제자백가의 책을 거두어 불태우게 했다. 의약·점복·농업 책은 남겼고, 배우려는 자는 관리를 스승으로 삼게 했다.
이듬해 불로장생의 약을 구하겠다던 방사 노생·후생 등이 진시황을 비난하고 달아나자, 진시황은 함양의 학자들을 조사해 460여 명을 산 채로 구덩이에 묻었다고 사마천은 적었다. 묻힌 사람의 상당수가 유학자보다 방사였다는 견해도 있다. 이를 말린 맏아들 부소는 몽염이 있는 북쪽 변경으로 쫓겨났다.
분서갱유는 법가에 따른 사상 통제의 상징이 되었고, 진의 가혹함을 말할 때 늘 첫손에 꼽혔다. 한 때에 숨겨 두었던 책과 학자들의 기억으로 경전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금문·고문 경학의 논쟁이 생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