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1904년 7월 18일
대한매일신보 창간
영국인 베델과 양기탁이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다. 영국인이 사장이라 일본의 검열을 피해 항일 논조를 펼 수 있었다.

대한매일신보사 · Public domain · 원본
러일 전쟁을 취재하러 온 영국 신문 특파원 베델이 양기탁과 함께 창간했다. 영국인에게는 치외 법권이 있어 일본이 마음대로 검열하거나 처벌할 수 없었다. 국한문판·한글판·영문판을 내며 가장 많이 읽히는 신문이 되었다.
을사늑약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고종의 친서를 싣고, 의병 활동을 보도했으며, 1907년 국채 보상 운동에 앞장섰다. 신채호·박은식이 논설을 썼고 신민회 인사들이 모였다. 일본은 베델을 재판에 넘기고 양기탁을 구속하며 탄압했고, 국권 피탈 뒤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로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