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1904년 7월 18일

대한매일신보 창간

영국인 베델과 양기탁이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다. 영국인이 사장이라 일본의 검열을 피해 항일 논조를 펼 수 있었다.

대한매일신보 창간호 — 1904년
대한매일신보 창간호 — 1904년

대한매일신보사 · Public domain · 원본

러일 전쟁을 취재하러 온 영국 신문 특파원 베델이 양기탁과 함께 창간했다. 영국인에게는 치외 법권이 있어 일본이 마음대로 검열하거나 처벌할 수 없었다. 국한문판·한글판·영문판을 내며 가장 많이 읽히는 신문이 되었다.

을사늑약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고종의 친서를 싣고, 의병 활동을 보도했으며, 1907년 국채 보상 운동에 앞장섰다. 신채호·박은식이 논설을 썼고 신민회 인사들이 모였다. 일본은 베델을 재판에 넘기고 양기탁을 구속하며 탄압했고, 국권 피탈 뒤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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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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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대한제국 — 고종

관련 인물

  • 베델1872년 – 1909년

    주도자 · 영국 언론인. 양기탁과 대한매일신보를 펴냈다. 영국인이라 통감부의 검열을 받지 않았다

  • 양기탁1871년 – 1938년

    주도자 · 대한매일신보를 베델과 함께 펴냈고, 국채 보상 운동과 신민회를 이끌었다

  • 박은식1859년 – 1925년

    참여자 · 민족주의 사학자.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썼고 임시 정부 제2대 대통령이 되었다

  • 신채호1880년 – 1936년

    참여자 · 민족주의 사학자. "조선상고사"를 쓰고 의열단의 "조선 혁명 선언"을 지었다.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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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한일 의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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