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880년 – 1936년

신채호

민족주의 사학자. "조선상고사"를 쓰고 의열단의 "조선 혁명 선언"을 지었다.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호는 단재. 충청도 대덕(지금의 대전)에서 태어나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벼슬을 버리고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에 논설을 썼다. 1908년 「독사신론」으로 왕조 중심이 아닌 민족 중심의 역사를 내세웠고, 『을지문덕전』·『이순신전』 같은 영웅전을 지어 애국심을 일깨웠다. 신민회에도 참여했다.

1910년 망명해 연해주·베이징 등에서 활동했다. 1919년 임시 정부 수립에 참여했으나, 이승만이 미국에 위임 통치를 청원한 일에 강하게 반대하며 임시 정부와 갈라섰다. 1923년 의열단의 부탁으로 「조선 혁명 선언」을 써서 민중의 직접 혁명과 폭력 투쟁을 독립의 길로 내세웠다.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썼고, 고조선과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국 고대사를 새로 세웠다. 뒤에 아나키즘 운동에 뛰어들어 1928년 자금을 마련하려다 타이완에서 붙잡혔고, 징역 10년을 선고받아 뤼순 감옥에서 지내다 1936년 2월 21일 옥사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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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의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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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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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인 베델과 양기탁이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다. 영국인이 사장이라 일본의 검열을 피해 항일 논조를 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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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채호가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을 연재해 민족을 중심에 둔 역사 서술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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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 1935년의열단저자

    김원봉이 만주 지린에서 의열단을 조직해 일제의 주요 기관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의열 투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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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3년국민 대표 회의참여자

    임시 정부의 진로를 놓고 국내외 독립운동 대표들이 상하이에서 회의를 열었다. 창조파와 개조파가 맞서 결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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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5년 – 1938년조선사 편수회와 식민 사관관련자

    조선 총독부가 조선사 편수회를 두어 "조선사"를 펴내며 정체성론·타율성론·당파성론 같은 식민 사관을 퍼뜨려 식민 지배를 정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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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채호가 쓴 "조선상고사"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보고 고대사의 주체성을 강조했다.

함께 나오는 인물

  • 박은식1859년 – 1925년

    민족주의 사학자.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썼고 임시 정부 제2대 대통령이 되었다

  • 베델1872년 – 1909년

    영국 언론인. 양기탁과 대한매일신보를 펴냈다. 영국인이라 통감부의 검열을 받지 않았다

  • 양기탁1871년 – 1938년

    대한매일신보를 베델과 함께 펴냈고, 국채 보상 운동과 신민회를 이끌었다

  • 김원봉1898년 – 1958년

    의열단 단장. 민족 혁명당을 이끌고 조선 의용대를 만들었다.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 김상옥1890년 – 1923년

    의열단원. 1923년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자결했다

  • 나석주1892년 – 1926년

    의열단원. 1926년 서울의 동양 척식 주식회사와 조선 식산 은행에 폭탄을 던지고 자결했다

  • 안창호1878년 – 1938년

    신민회를 만들고 미국에서 흥사단을 세웠다. 임시 정부 내무총장으로 연통제를 실시했다

  • 박용만1881년 – 1928년

    하와이에서 대조선 국민 군단을 만들어 무장 투쟁을 준비했다. 국민 대표 회의에서 창조파였다

이 인물이 나오는 테마

  • 역사서의 편찬375년 – 1931년

    서기·국사·신집에서 조선상고사까지 — 왕권의 과시, 유교 사관, 자주 의식, 민족주의 사학으로 이어진 역사 쓰기

  •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주의1912년 – 1949년

    신해혁명으로 선 중화민국이 군벌 분열·5·4 운동·국공 합작과 북벌을 거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국공 내전으로 갈라진 시대 — 일본은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만주 사변·군부 쿠데타를 거쳐 중일 전쟁과 대동아 공영권으로 치달았고, 식민지 한국은 3·1 운동과 무장 독립 투쟁으로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