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859년 – 1925년

박은식

민족주의 사학자.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썼고 임시 정부 제2대 대통령이 되었다

호는 백암.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나 주자학을 깊이 공부했으나, 독립 협회에 참여하며 개화사상을 받아들였다.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논설을 쓰며 애국 계몽 운동을 이끌었고, 서북 학회를 이끌었다. 1909년 「유교 구신론」에서 백성을 위한 실천적 유교로 바뀌자고 주장하며 대동교를 세웠다.

국권 피탈 뒤 1911년 서간도로 망명해 『동명성왕실기』·『발해태조건국지』 등 민족 영웅의 전기를 썼다. 상하이로 옮겨 신규식과 동제사를 이끌었고, 1915년 『한국통사』에서 "나라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다"라며 정신(국혼)이 살아 있으면 나라는 다시 일어난다고 했다. 1920년에는 3·1 운동과 그 뒤의 투쟁을 기록한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펴냈다.

1924년 임시 정부의 국무총리 겸 대통령 대리가 되었고, 1925년 3월 이승만이 탄핵되자 제2대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제를 국무령 중심의 내각 책임제로 고치는 헌법 개정을 이끈 뒤 물러났고, 그해 11월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려면 전 민족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고, 1993년 유해가 돌아와 국립 서울 현충원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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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의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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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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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인 베델과 양기탁이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다. 영국인이 사장이라 일본의 검열을 피해 항일 논조를 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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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식이 상하이에서 "한국통사"를 펴내 개항 이후 일제의 침략 과정을 밝혔다. 민족의 "혼"을 지키면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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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3년국민 대표 회의관련자

    임시 정부의 진로를 놓고 국내외 독립운동 대표들이 상하이에서 회의를 열었다. 창조파와 개조파가 맞서 결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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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5년 – 1938년조선사 편수회와 식민 사관관련자

    조선 총독부가 조선사 편수회를 두어 "조선사"를 펴내며 정체성론·타율성론·당파성론 같은 식민 사관을 퍼뜨려 식민 지배를 정당화했다.

함께 나오는 인물

  • 신채호1880년 – 1936년

    민족주의 사학자. "조선상고사"를 쓰고 의열단의 "조선 혁명 선언"을 지었다.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 베델1872년 – 1909년

    영국 언론인. 양기탁과 대한매일신보를 펴냈다. 영국인이라 통감부의 검열을 받지 않았다

  • 양기탁1871년 – 1938년

    대한매일신보를 베델과 함께 펴냈고, 국채 보상 운동과 신민회를 이끌었다

  • 안창호1878년 – 1938년

    신민회를 만들고 미국에서 흥사단을 세웠다. 임시 정부 내무총장으로 연통제를 실시했다

  • 박용만1881년 – 1928년

    하와이에서 대조선 국민 군단을 만들어 무장 투쟁을 준비했다. 국민 대표 회의에서 창조파였다

  • 이승만1875년 – 1965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 초대 대통령. 미국에서 외교 활동을 폈다. 뒤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 이상룡1858년 – 1932년

    안동 임청각의 종손. 서간도에 경학사를 세우고, 뒤에 임시 정부 초대 국무령이 되었다

  • 김구1876년 – 1949년

    호는 백범. 한인 애국단을 만들고 임시 정부 주석으로 한국광복군을 이끌었다. "백범일지"

이 인물이 나오는 테마

  • 역사서의 편찬375년 – 1931년

    서기·국사·신집에서 조선상고사까지 — 왕권의 과시, 유교 사관, 자주 의식, 민족주의 사학으로 이어진 역사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