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탁의 죽음
192년 사도 왕윤이 동탁의 양아들이자 호위 장수인 여포를 끌어들여 장안에서 동탁을 죽였다. 그러나 동탁의 부하들이 장안을 되찾아 왕윤을 죽이고, 여포는 달아났다.
동탁은 여포를 아들로 삼아 늘 곁을 지키게 했지만, 화가 나면 창을 던질 만큼 거칠게 대했다. 여포는 동탁의 시녀와 몰래 정을 통해 들킬까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정사는 적는다. 사도 왕윤은 이 틈을 타 여포를 설득했고, 192년 4월 여포가 궁 문 앞에서 동탁을 찔러 죽였다. 백성들은 거리에서 춤추며 기뻐했다고 한다.
그러나 왕윤이 동탁의 옛 부하들을 용서하지 않자, 이각·곽사가 군사를 몰아 장안을 함락했다. 왕윤은 죽고 여포는 동쪽으로 달아나 떠돌았다. 황제는 다시 군벌의 손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