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황건적의 난부터 진의 통일까지 — 조조·유비·손권이 다툰 위·촉·오 삼국 시대 100년

shi zhao · Public domain · 원본
황건적의 난부터 진의 통일까지 — 조조·유비·손권이 다툰 위·촉·오 삼국 시대 100년

shi zhao · Public domain · 원본
태평도의 장각이 누런 두건을 두른 농민을 이끌고 후한에 맞서 일어났다. 난은 그해에 꺾였으나 진압에 나선 지방 세력이 군벌로 자라 삼국 시대의 막이 올랐다.
군벌 동탁이 낙양에 들어와 황제를 갈아 세우고 조정을 쥐었다. 동쪽의 제후들이 연합군을 일으키자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도읍을 옮겼다.
조조가 관도에서 화북 최대의 군벌 원소를 무찔렀다. 이 승리로 조조는 화북 통일의 길을 열었다.
유비가 융중의 초가로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가 그를 맞아들였다. 제갈량은 형주와 익주를 얻어 손권과 손잡고 조조에 맞서는 천하 삼분의 계책을 내었다.
형주로 내려온 조조의 기병이 남쪽으로 달아나던 유비를 당양 장판에서 따라잡았다. 유비는 처자를 버리고 달아났고, 장비가 다리를 끊고 뒤를 막았다.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이 장강의 적벽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조조의 대군을 불로 무찔렀다. 조조의 천하 통일이 막히고 셋으로 나뉜 형세가 굳어졌다.
유비의 장수 관우가 위의 번성을 에워싸고 구원군을 물에 잠기게 했으나, 그 틈에 오의 여몽이 형주를 빼앗았다. 관우는 사로잡혀 죽었고 촉과 오의 동맹이 깨졌다.
한중을 노린 유비가 정군산에 진을 쳤고, 그의 장수 황충이 이를 치러 온 위의 하후연을 베었다. 유비는 한중을 차지하고 한중왕이 되었다.
조조의 아들 조비가 헌제에게서 제위를 넘겨받아 위를 세웠다. 400년 넘게 이어진 한 왕조가 끝나고 삼국 시대가 시작되었다.
유비가 성도에서 황제가 되어 한을 잇는다고 내세웠다. 역사에서는 촉한 또는 촉이라 부른다.
관우의 원수를 갚으려고 오를 친 유비가 이릉에서 오의 육손에게 크게 졌다. 유비는 이듬해 백제성에서 죽으며 아들 유선을 제갈량에게 맡겼다.
유비가 죽은 뒤 남쪽의 남중에서 일어난 반란을 제갈량이 직접 군을 이끌고 가 평정했다. 남중의 물자와 군사는 뒤의 북벌을 받쳤다.
제갈량의 첫 북벌에서 선봉 마속이 지시를 어기고 산 위에 진을 쳤다가 위의 장합에게 물길을 끊겨 크게 졌다. 제갈량은 물러났고 마속을 처형했다.
촉한의 승상 제갈량이 「출사표」를 올리고 다섯 차례 위를 쳤다. 큰 성과 없이 234년 오장원 진중에서 죽었다.
강동을 다스리던 손권이 황제가 되어 오를 세웠다. 이로써 위·촉·오 세 나라가 모두 황제를 칭했다.
제갈량이 마지막 북벌에서 오장원에 진을 치고 사마의와 백여 일을 맞섰다. 사마의가 싸움에 응하지 않는 가운데 제갈량이 병으로 죽자 촉군은 물러났다.
동천왕이 위의 서안평을 치자 위의 장수 관구검이 쳐들어와 환도성을 함락했다.
위의 사마의가 정변을 일으켜 실권자 조상 일파를 없앴다. 이후 위의 권력은 사마씨에게 넘어갔다.
위의 등애가 험한 샛길을 넘어 성도에 이르자 촉한의 황제 유선이 항복했다. 세 나라 가운데 가장 먼저 무너졌다.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이 위의 황제에게서 제위를 넘겨받아 진을 세웠다. 위는 45년 만에 끝났다.
서진의 군대가 장강을 따라 내려가 건업에 이르자 오의 황제 손호가 항복했다. 후한 말부터 이어진 분열이 끝나고 중국이 다시 통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