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793년 10월 16일

마리 앙투아네트 처형

콩시에르주리에 갇혀 있던 왕비가 혁명 재판소에서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이튿날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마리 앙투아네트 — 길가에서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린 스케치, 1793년 10월 16일, 루브르 박물관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마리 앙투아네트 — 길가에서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린 스케치, 1793년 10월 16일, 루브르 박물관

Jacques-Louis David · Public domain · 원본

루이 16세가 처형된 뒤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들과 떨어져 1793년 8월 콩시에르주리 감옥으로 옮겨졌다. 10월 14일부터 열린 혁명 재판소의 재판에서 그녀는 외국과 내통하고 나라의 재물을 낭비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아들과 관련된 터무니없는 고발까지 나왔다. 16일 새벽 사형이 선고되었다.

그날 낮 그녀는 손이 묶인 채 짐수레에 실려 혁명 광장으로 끌려가 처형되었다. 길가에서 지켜보던 다비드가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스케치로 남겼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는 말은 그녀가 했다는 증거가 없는 이야기이다.

지도에서 보기

1793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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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프랑스
관련 장소
콩시에르주리, 콩코르드 광장

관련 인물

  • 마리 앙투아네트1755년 – 1793년

    관련자 · 루이 16세의 왕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혁명 중 바렌 도주에 실패하고 1793년 처형되었다

  • 자크루이 다비드1748년 – 1825년

    관련자 · 신고전주의 화가·국민 공회 의원. 「테니스코트의 서약」「마라의 죽음」을 그리고 혁명 축제를 연출했으며, 뒤에 나폴레옹의 궁정 화가가 되었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794년 최고 존재의 제전

이 사건이 든 테마

  • 프랑스 혁명1787년 – 1799년

    명사회와 삼부회에서 브뤼메르 18일 쿠데타까지 —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운 뒤 공포 정치와 반동을 거쳐 나폴레옹에게 이른 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