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592년 10월 5–10일(음력)
진주대첩
진주 목사 김시민이 3천여 명으로 일본군 2만여 명의 공격을 엿새 동안 막아 냈다. 김시민은 이때 입은 상처로 숨졌다.

진주는 경상 우도의 중심이자, 곡창 지대인 전라도로 가는 길목이었다. 일본군은 이곳을 차지하려고 1592년 10월 대군을 보내 성을 에워쌌다.
진주 목사 김시민은 성안의 군민과 함께 화약과 총통을 갖추고 맞섰다. 일본군은 사다리와 높은 망루를 세워 공격했으나, 조선군은 총통과 활, 돌과 끓는 물로 막아 냈다. 성 밖에서는 곽재우 등이 보낸 의병과 전라도 의병이 일본군을 견제했다. 엿새 만에 일본군은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김시민은 싸움 마지막 무렵 이마에 총탄을 맞아 얼마 뒤 숨졌다.
이 승리로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요충지를 지켰다. 이듬해 1593년 6월 일본군은 다시 진주성을 공격해 함락했다(제2차 진주성 전투). 이때 김천일·최경회 등이 전사했고, 논개가 일본 장수를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졌다고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