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양요
천주교 박해를 구실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점령했다. 양헌수가 정족산성에서 물리쳤고, 프랑스군은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 물러났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1866년 초 병인박해로 프랑스 선교사 9명과 많은 신자가 처형되었다. 탈출한 리델 신부가 톈진의 프랑스 함대에 알리자, 로즈 제독은 먼저 군함 3척으로 한강을 거슬러 양화진·서강까지 올라와 물길을 살폈다.
9월 로즈는 군함 7척으로 다시 와 강화부를 점령했다. 한성근이 문수산성에서, 양헌수가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치자, 프랑스군은 강화 행궁과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의궤 등 도서와 은괴를 빼앗아 물러갔다.
이 일로 흥선 대원군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더 굳게 했다. 1868년 오페르트 도굴 사건, 1871년 신미양요가 뒤를 이었다. 약탈된 외규장각 의궤는 2011년 영구 대여 형식으로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