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593년 2월 12일(음력)
행주대첩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3만 명이 넘는 일본군의 공격을 물리쳤다. 백성들도 돌을 날라 싸움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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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 탈환 뒤 명군은 벽제관에서 패해 물러났고, 일본군은 한양에 병력을 모으고 있었다. 전라 순찰사 권율은 한양을 되찾으려고 북상해 1593년 2월 한강 가의 행주산성에 진을 쳤다. 성에는 2천 3백여 명의 군사와 승병, 백성이 있었다.
2월 12일 우키타 히데이에·고니시 유키나가 등이 이끈 일본군 3만여 명이 일곱 차례에 걸쳐 공격해 왔다. 조선군은 변이중이 만든 화차와 신기전 등 화약 무기와 활로 맞섰다. 화살이 떨어질 무렵 충청 수사 정걸이 배로 화살을 실어 와 위기를 넘겼다. 부녀자들이 치마에 돌을 날라 "행주치마"라는 말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하나, 이 말은 그 전부터 있었다.
일본군은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났고, 4월 한양에서 철수해 남해안으로 내려갔다. 권율은 이 공으로 도원수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