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597년 1월 – 1598년 11월(음력)

정유재란

강화 협상이 깨지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다시 군대를 보냈다. 이듬해 히데요시가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정왜기공도권 — 1598년 조·명 연합군과 일본군의 싸움을 그린 명나라 두루마리
정왜기공도권 — 1598년 조·명 연합군과 일본군의 싸움을 그린 명나라 두루마리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평양성 탈환 뒤 명과 일본은 강화 협상을 벌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 황녀를 일본 천황의 후비로 보낼 것, 조선 8도 가운데 남쪽 4도를 넘길 것, 감합 무역을 다시 열 것 등을 요구했다. 명은 1596년 히데요시를 일본 국왕으로 책봉하는 데 그쳤고, 협상은 깨졌다.

1597년 일본군 14만여 명이 다시 건너왔다. 7월 칠천량에서 원균의 수군이 무너지자 일본군은 전라도로 들어가 8월 남원성을 함락하고 전주까지 차지했다. 그러나 9월 직산에서 조명 연합군에 막히고, 같은 달 명량에서 이순신에게 져 남쪽으로 물러났다. 일본군은 울산·순천 등 남해안에 왜성을 쌓고 버텼다.

1598년 8월 히데요시가 죽자 일본군은 철수를 시작했고, 11월 노량 해전을 끝으로 7년 전쟁이 끝났다. 일본군은 많은 조선 사람을 포로로 끌고 갔고, 그 가운데 도자기 장인들은 일본 도자기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지도에서 보기

1597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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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피침국 — 선조
일본 · 침략국
명 · 원군 — 만력제

관련 인물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
이후 사건
1597년 칠천량 해전

관련 작품

  • 방송: 벌거벗은 한국사 제19회 「1597년, 이순신은 왜 죽음을 생각했나?」방송 · 2022 · 이민웅 · tvN STORY

이 사건이 든 테마

  • 임진왜란1592년 – 1598년

    일본의 침략부터 노량해전까지 — 육지의 의병과 바다의 이순신, 명의 참전

  • 명·청과 에도 일본1500년 – 1800년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