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
강화 협상이 깨지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다시 군대를 보냈다. 이듬해 히데요시가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평양성 탈환 뒤 명과 일본은 강화 협상을 벌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 황녀를 일본 천황의 후비로 보낼 것, 조선 8도 가운데 남쪽 4도를 넘길 것, 감합 무역을 다시 열 것 등을 요구했다. 명은 1596년 히데요시를 일본 국왕으로 책봉하는 데 그쳤고, 협상은 깨졌다.
1597년 일본군 14만여 명이 다시 건너왔다. 7월 칠천량에서 원균의 수군이 무너지자 일본군은 전라도로 들어가 8월 남원성을 함락하고 전주까지 차지했다. 그러나 9월 직산에서 조명 연합군에 막히고, 같은 달 명량에서 이순신에게 져 남쪽으로 물러났다. 일본군은 울산·순천 등 남해안에 왜성을 쌓고 버텼다.
1598년 8월 히데요시가 죽자 일본군은 철수를 시작했고, 11월 노량 해전을 끝으로 7년 전쟁이 끝났다. 일본군은 많은 조선 사람을 포로로 끌고 갔고, 그 가운데 도자기 장인들은 일본 도자기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