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ltostratus · CC BY-SA 4.0 · 원본
봉림대군으로 병자호란 뒤 형 소현세자와 함께 심양에 볼모로 끌려갔다가 돌아왔다. 즉위 뒤 송시열 등 서인을 등용하고 어영청을 키우며 청을 치는 북벌을 준비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청의 요청으로 1654년과 1658년 조총 부대를 보내 러시아군을 쳤다(나선 정벌). 1653년 하멜이 제주에 표류했고, 시헌력이 채택되었다.

Altostratus · CC BY-SA 4.0 · 원본
봉림대군으로 병자호란 뒤 형 소현세자와 함께 심양에 볼모로 끌려갔다가 돌아왔다. 즉위 뒤 송시열 등 서인을 등용하고 어영청을 키우며 청을 치는 북벌을 준비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청의 요청으로 1654년과 1658년 조총 부대를 보내 러시아군을 쳤다(나선 정벌). 1653년 하멜이 제주에 표류했고, 시헌력이 채택되었다.
청에 볼모로 잡혀갔던 효종이 즉위하자 어영청을 키우고 송시열·이완 등을 등용해 청을 치려는 북벌을 준비했다. 효종이 죽자 중단되었다.
네덜란드 상선 스페르베르호가 제주에 난파했다. 하멜 일행은 13년 동안 조선에 머물다 탈출했고, 그가 쓴 표류기가 유럽에 조선을 알렸다.
김육의 건의로 서양 천문학을 바탕으로 청에서 만든 역법인 시헌력을 받아들였다.
청의 요청으로 조선 조총군이 두 차례 흑룡강 쪽에 나가 남하하던 러시아군을 물리쳤다.
숙종이 금위영을 두어 훈련도감·어영청·총융청·수어청과 함께 5군영 체제가 갖추어졌다.



북로남왜와 은 경제에 흔들린 명이 이자성의 난으로 무너지고, 만주의 청이 강희·옹정·건륭 3대에 가장 넓은 영토와 번영을 이룬 시대 — 일본은 전국 시대의 통일을 거쳐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와 쇄국으로, 조선은 두 차례 전쟁 뒤 통신사와 북학으로 이웃과 만났다
술레이만 1세의 오스만, 아크바르의 무굴, 아바스 1세의 사파비가 번영하다 18세기에 기울고, 대서양에서는 노예 무역과 식민지가 아메리카를 바꾸어 미국 독립에 이른 300년
9서당 10정에서 2군 6위, 5위와 진관, 5군영, 원수부까지 — 전쟁의 위기마다 새로 꾸린 군대
루터의 95개조에서 예카테리나 2세까지 — 갈라진 크리스트교 세계의 종교 전쟁이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끝나고, 왕권신수설·상비군·관료제·중상주의를 앞세운 절대 왕정과 동유럽의 계몽 전제 군주가 주권 국가의 세력 균형을 다투던 시대
코페르니쿠스에서 뉴턴까지의 과학 혁명,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으로 자리 잡은 영국의 의회 정치, 그리고 이성으로 사회를 바꾸려 한 계몽사상 — 시민 혁명과 산업 혁명의 바탕
탐라에서 제주로 — 삼별초의 마지막 항전과 원의 목장, 표류와 유배, 그리고 4·3의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