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보
다른 이름: 미라보 백작, 오노레 가브리엘 리케티
귀족 출신으로 제3 신분 대표가 된 웅변가. 혁명 초 국민 의회를 이끌며 입헌 군주제를 꾀했다
1749년 르비뇽에서 경제학자 미라보 후작의 아들로 태어났다. 젊어서 빚과 추문으로 아버지의 요청에 따라 여러 번 갇혔고, 그동안 전제 정치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1789년 귀족이면서도 엑상프로방스의 제3 신분 대표로 뽑혔고, 6월 23일 왕의 해산 명령에 「총검의 힘이 아니고는 물러나지 않겠다」고 맞서 혁명 초기의 가장 이름난 웅변가가 되었다. 강한 왕권이 있는 입헌 군주제를 바라 뒤로는 왕실과 비밀리에 연락하며 돈을 받았다. 1791년 4월 2일 병으로 죽어 팡테옹에 처음 묻혔으나, 1792년 튈르리 궁전의 비밀 금고에서 왕실과의 관계가 드러나 1794년 유해가 옮겨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