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855년 – 1934년

이석영

다른 이름: 영석 이석영

이회영의 둘째 형. 양아버지 이유원에게 물려받은 큰 재산을 내놓아 신흥 강습소(신흥 무관 학교)의 밑천을 댔고, 상하이에서 가난 속에 숨졌다

백사 이항복의 후손으로, 이조 판서 이유승의 여섯 아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의 양자가 되어 그 큰 재산을 물려받았다. "서울에서 양주까지 이 집안 땅을 밟지 않고는 갈 수 없었다"는 말이 전할 만큼 큰 부자였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동생 이회영의 뜻을 따라 여섯 형제가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그해 겨울 가족 수십 명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로 떠났다. 여섯 형제가 마련한 돈 가운데 가장 많은 몫이 이석영의 것이었다. 이 돈으로 1911년 류허현 삼원보에 자치 기관 경학사와 독립군을 기르는 신흥 강습소를 세웠고, 땅을 사서 이주한 한인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했다. 신흥 강습소는 1919년 신흥 무관 학교가 되어 3,500여 명의 졸업생을 냈고, 이들은 청산리 전투를 비롯한 무장 독립 투쟁의 중심이 되었다.

재산은 학교와 독립군을 꾸리는 데 모두 들어갔다. 이석영은 뒤에 베이징을 거쳐 상하이로 옮겨 끼니를 잇기 어려운 가난 속에 살았고, 1934년 상하이에서 숨졌다. 아들 이규준은 베이징에서 의열 투쟁 단체 다물단에 몸담았다.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여섯 형제 가운데 광복을 보고 돌아온 사람은 다섯째 이시영 하나뿐이었다.

지도에서 보기

생애의 동선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관련 사건 1건

  1. 1

    신민회의 이회영 형제와 이상룡 등이 서간도 삼원보로 옮겨 자치 기관 경학사와 독립군 양성 기관 신흥 강습소를 세웠다.

함께 나오는 인물

  • 이회영1867년 – 1932년

    여섯 형제가 재산을 처분하고 서간도로 옮겨 경학사와 신흥 강습소를 세웠다

  • 이시영1869년 – 1953년

    이회영의 아우. 여섯 형제와 서간도로 망명해 신흥 강습소를 세우고, 임시 정부 법무·재무총장을 거쳐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 되었다

  • 이상룡1858년 – 1932년

    안동 임청각의 종손. 서간도에 경학사를 세우고, 뒤에 임시 정부 초대 국무령이 되었다

  • 이동녕1869년 – 1940년

    신민회 회원. 서간도에서 신흥 강습소를 세우는 데 참여했고, 임시 의정원 의장과 임시 정부 국무령·주석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