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858년 – 1932년

이상룡

안동 임청각의 종손. 서간도에 경학사를 세우고, 뒤에 임시 정부 초대 국무령이 되었다

호는 석주, 본명은 이상희. 경상도 안동 임청각의 종손으로 태어나 유학을 공부했다. 을미사변 뒤 의병을 준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신학문으로 눈을 돌려, 안동의 협동 학교 설립을 돕고 대한 협회 안동 지회를 이끌었다. 신민회에도 참여했다.

1911년 1월 가족을 이끌고 서간도 삼원보로 망명했다. 떠나기 전 집안의 노비 문서를 불태워 노비를 풀어 주었다고 전한다. 그해 이회영·이동녕 등과 자치 단체 경학사를 세워 사장을 맡고, 독립군을 기를 신흥 강습소를 열었다. 경학사를 이은 부민단·한족회를 이끌었고, 1919년 서로 군정서의 독판이 되어 남만주의 무장 투쟁을 지휘했다.

1925년 이승만이 탄핵되고 헌법이 국무령 중심의 내각 책임제로 바뀌자 임시 정부의 초대 국무령이 되어 상하이로 갔다. 그러나 내각을 꾸리지 못해 이듬해 물러나 만주로 돌아갔고, 1932년 5월 지린성 수란에서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내 유골을 고국에 싣고 가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아들·손자 등 집안의 여러 사람이 독립운동에 몸 바쳤고, 일제는 임청각 마당으로 중앙선 철길을 내 집의 일부를 헐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1990년 유해가 돌아와 국립 서울 현충원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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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의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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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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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민회의 이회영 형제와 이상룡 등이 서간도 삼원보로 옮겨 자치 기관 경학사와 독립군 양성 기관 신흥 강습소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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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3년국민 대표 회의관련자

    임시 정부의 진로를 놓고 국내외 독립운동 대표들이 상하이에서 회의를 열었다. 창조파와 개조파가 맞서 결렬되었다.

함께 나오는 인물

  • 이회영1867년 – 1932년

    여섯 형제가 재산을 처분하고 서간도로 옮겨 경학사와 신흥 강습소를 세웠다

  • 이석영1855년 – 1934년

    이회영의 둘째 형. 양아버지 이유원에게 물려받은 큰 재산을 내놓아 신흥 강습소(신흥 무관 학교)의 밑천을 댔고, 상하이에서 가난 속에 숨졌다

  • 이시영1869년 – 1953년

    이회영의 아우. 여섯 형제와 서간도로 망명해 신흥 강습소를 세우고, 임시 정부 법무·재무총장을 거쳐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 되었다

  • 이동녕1869년 – 1940년

    신민회 회원. 서간도에서 신흥 강습소를 세우는 데 참여했고, 임시 의정원 의장과 임시 정부 국무령·주석을 지냈다

  • 안창호1878년 – 1938년

    신민회를 만들고 미국에서 흥사단을 세웠다. 임시 정부 내무총장으로 연통제를 실시했다

  • 신채호1880년 – 1936년

    민족주의 사학자. "조선상고사"를 쓰고 의열단의 "조선 혁명 선언"을 지었다.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 박용만1881년 – 1928년

    하와이에서 대조선 국민 군단을 만들어 무장 투쟁을 준비했다. 국민 대표 회의에서 창조파였다

  • 이승만1875년 – 1965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 초대 대통령. 미국에서 외교 활동을 폈다. 뒤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