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룡
안동 임청각의 종손. 서간도에 경학사를 세우고, 뒤에 임시 정부 초대 국무령이 되었다
호는 석주, 본명은 이상희. 경상도 안동 임청각의 종손으로 태어나 유학을 공부했다. 을미사변 뒤 의병을 준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신학문으로 눈을 돌려, 안동의 협동 학교 설립을 돕고 대한 협회 안동 지회를 이끌었다. 신민회에도 참여했다.
1911년 1월 가족을 이끌고 서간도 삼원보로 망명했다. 떠나기 전 집안의 노비 문서를 불태워 노비를 풀어 주었다고 전한다. 그해 이회영·이동녕 등과 자치 단체 경학사를 세워 사장을 맡고, 독립군을 기를 신흥 강습소를 열었다. 경학사를 이은 부민단·한족회를 이끌었고, 1919년 서로 군정서의 독판이 되어 남만주의 무장 투쟁을 지휘했다.
1925년 이승만이 탄핵되고 헌법이 국무령 중심의 내각 책임제로 바뀌자 임시 정부의 초대 국무령이 되어 상하이로 갔다. 그러나 내각을 꾸리지 못해 이듬해 물러나 만주로 돌아갔고, 1932년 5월 지린성 수란에서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내 유골을 고국에 싣고 가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아들·손자 등 집안의 여러 사람이 독립운동에 몸 바쳤고, 일제는 임청각 마당으로 중앙선 철길을 내 집의 일부를 헐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1990년 유해가 돌아와 국립 서울 현충원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