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11년

서간도의 경학사와 신흥 강습소

신민회의 이회영 형제와 이상룡 등이 서간도 삼원보로 옮겨 자치 기관 경학사와 독립군 양성 기관 신흥 강습소를 세웠다.

이회영 — 형제들과 서간도로 옮겨 신흥 강습소를 세웠다
이회영 — 형제들과 서간도로 옮겨 신흥 강습소를 세웠다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국권 피탈 전후 독립운동가들은 장기적인 독립 전쟁을 위해 국외에 독립운동 기지를 세웠다. 1911년 서간도 류허현 삼원보에 경학사를 세워 한인의 농업과 교육을 돌보고, 신흥 강습소를 열어 독립군을 길렀다. 경학사는 부민단·한족회로, 신흥 강습소는 1919년 신흥 무관 학교로 이어져 3,500여 명의 졸업생이 독립군의 중심이 되었다.

북간도에는 용정의 서전서숙·명동 학교와 간민회가, 밀산부에는 한흥동이 있었다. 연해주의 신한촌에서는 권업회와 대한 광복군 정부가, 미주에서는 대한인 국민회(1910)와 박용만의 대조선 국민 군단(1914, 하와이)이, 상하이에서는 동제사(1912)가 활동했다.

지도에서 보기

1911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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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
중화민국
관련 장소
삼원보

관련 인물

  • 이회영1867년 – 1932년

    주도자 · 여섯 형제가 재산을 처분하고 서간도로 옮겨 경학사와 신흥 강습소를 세웠다

  • 이석영1855년 – 1934년

    주도자 · 이회영의 둘째 형. 양아버지 이유원에게 물려받은 큰 재산을 내놓아 신흥 강습소(신흥 무관 학교)의 밑천을 댔고, 상하이에서 가난 속에 숨졌다

  • 이시영1869년 – 1953년

    참여자 · 이회영의 아우. 여섯 형제와 서간도로 망명해 신흥 강습소를 세우고, 임시 정부 법무·재무총장을 거쳐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 되었다

  • 이상룡1858년 – 1932년

    주도자 · 안동 임청각의 종손. 서간도에 경학사를 세우고, 뒤에 임시 정부 초대 국무령이 되었다

  • 이동녕1869년 – 1940년

    참여자 · 신민회 회원. 서간도에서 신흥 강습소를 세우는 데 참여했고, 임시 의정원 의장과 임시 정부 국무령·주석을 지냈다

앞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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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105인 사건
이후 사건
1911년 종교계의 민족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