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
다른 이름: 성재 이시영
이회영의 아우. 여섯 형제와 서간도로 망명해 신흥 강습소를 세우고, 임시 정부 법무·재무총장을 거쳐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 되었다
호는 성재. 백사 이항복의 후손으로, 이조 판서 이유승의 여섯 아들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났다. 대한제국에서 평안도 관찰사·한성 재판소장 등을 지냈으나, 1910년 나라가 망하자 형 이회영·이석영 등 여섯 형제와 함께 재산을 처분하고 서간도로 망명했다. 1911년 삼원보에서 경학사와 신흥 강습소를 세우는 데 함께했다.
1919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에 참여해 법무총장이 되었고, 뒤에 재무총장을 오래 맡아 늘 쪼들리던 임시 정부의 살림을 꾸렸다. 독립운동가들이 흩어지고 임시 정부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도 김구·이동녕과 함께 끝까지 임시 정부를 지켰다.
여섯 형제 가운데 홀로 살아서 1945년 11월 임시 정부 요인으로 귀국했다. 1948년 7월 국회에서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으로 뽑혔으나, 1951년 국민 방위군 사건 등 정부의 부패와 실정에 항의하며 물러났다. 1953년 피란지 부산에서 세상을 떠났다. 19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