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1869년 – 1940년

이동녕

다른 이름: 석오

신민회 회원. 서간도에서 신흥 강습소를 세우는 데 참여했고, 임시 의정원 의장과 임시 정부 국무령·주석을 지냈다

호는 석오. 충청도 천안 목천에서 태어났다. 독립 협회에서 활동하다 만민 공동회 일로 옥고를 치렀고, 1904년 상동 교회의 상동 청년회에서 전덕기 등과 을사늑약 반대 운동을 폈다. 1906년 북간도 용정에서 이상설과 서전서숙을 세웠고, 1907년 안창호·양기탁 등과 신민회를 만들었다.

국권 피탈 뒤 이회영 형제와 서간도 삼원보로 옮겨 경학사를 세우고, 신흥 강습소의 초대 소장을 맡았다.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임시 의정원의 초대 의장으로 회의를 이끌어,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민주 공화제를 담은 대한민국 임시 헌장을 만들었다.

1920년대 독립운동가들이 흩어져 임시 정부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 국무령·주석 등을 맡아 김구와 함께 정부를 지켰다. 1930년 한국 독립당을 만들어 이사장이 되었고, 1932년 윤봉길 의거 뒤에는 일본의 추적을 피해 항저우에서 치장까지 옮겨 다니는 임시 정부를 이끌었다. 1940년 3월 쓰촨성 치장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48년 김구가 유해를 모셔 와 서울 효창 공원에 묻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생애의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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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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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 – 1911년신민회참여자

    안창호·양기탁 등이 비밀 결사 신민회를 만들었다. 국권 회복과 공화정체의 근대 국가 수립을 목표로 교육·산업을 일으키고 국외 독립운동 기지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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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민회의 이회영 형제와 이상룡 등이 서간도 삼원보로 옮겨 자치 기관 경학사와 독립군 양성 기관 신흥 강습소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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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운동 뒤 1919년 4월 11일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민주 공화제를 채택한 첫 정부로, 9월에 여러 임시 정부를 하나로 합쳤다.

함께 나오는 인물

  • 안창호1878년 – 1938년

    신민회를 만들고 미국에서 흥사단을 세웠다. 임시 정부 내무총장으로 연통제를 실시했다

  • 이시영1869년 – 1953년

    이회영의 아우. 여섯 형제와 서간도로 망명해 신흥 강습소를 세우고, 임시 정부 법무·재무총장을 거쳐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 되었다

  • 양기탁1871년 – 1938년

    대한매일신보를 베델과 함께 펴냈고, 국채 보상 운동과 신민회를 이끌었다

  • 이승훈1864년 – 1930년

    신민회 회원으로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세웠다.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3·1 운동 때 기독교 쪽 민족 대표였다

  • 이회영1867년 – 1932년

    여섯 형제가 재산을 처분하고 서간도로 옮겨 경학사와 신흥 강습소를 세웠다

  • 이석영1855년 – 1934년

    이회영의 둘째 형. 양아버지 이유원에게 물려받은 큰 재산을 내놓아 신흥 강습소(신흥 무관 학교)의 밑천을 댔고, 상하이에서 가난 속에 숨졌다

  • 이상룡1858년 – 1932년

    안동 임청각의 종손. 서간도에 경학사를 세우고, 뒤에 임시 정부 초대 국무령이 되었다

  • 이승만1875년 – 1965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 초대 대통령. 미국에서 외교 활동을 폈다. 뒤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 인물이 나오는 테마

  •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주의1912년 – 1949년

    신해혁명으로 선 중화민국이 군벌 분열·5·4 운동·국공 합작과 북벌을 거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국공 내전으로 갈라진 시대 — 일본은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만주 사변·군부 쿠데타를 거쳐 중일 전쟁과 대동아 공영권으로 치달았고, 식민지 한국은 3·1 운동과 무장 독립 투쟁으로 맞섰다

  • 평양기원전 194년 – 2007년

    고조선 왕검성에서 남북 정상 회담까지 — 고구려의 도읍이자 고려의 서경, 대동강 가의 북쪽 중심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