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11세기 중엽 (문종 때)

최충의 9재 학당과 사학의 발달

문하시중에서 물러난 최충이 9재 학당을 열자 사학 12도가 번성했다. 관학이 위축되자 숙종·예종·인종이 관학을 다시 일으켰다.

최충의 9재 학당(문헌공도)을 비롯한 12개 사학(사학 12도)에는 과거를 준비하는 귀족 자제가 몰렸고, 최충은 "해동공자"로 불렸다. 사학의 스승이 과거 시험관을 지내는 일이 많아 문벌 귀족끼리 학연을 맺었다.

관학이 위축되자 숙종은 서적포를 두어 책을 찍었고, 예종은 국학에 전문 강좌인 7재(무학재 포함)를 두고 장학 재단 양현고(1119)와 학문 연구소인 청연각·보문각을 세웠다. 인종은 국자감을 경사 6학으로 정비하고 지방에 향학을 늘렸다.

지도에서 보기

1055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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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고려 — 문종
관련 장소
송악 (개성)

관련 인물

  • 최충984년 – 1068년

    주도자 · 문종 때 문하시중을 지내고 물러나 9재 학당(문헌공도)을 연 유학자. "해동공자"라 불렸다

  • 문종1019년 – 1083년

    군주 · 고려 제11대 왕. 경정 전시과를 시행하고 문물을 정비해 고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의천의 아버지

  • 예종1079년 – 1122년

    관련자 · 고려 제16대 왕. 윤관을 보내 동북 9성을 쌓았고, 국학에 7재를 두어 관학을 일으켰다

앞뒤 사건

이후 사건
1076년 경정 전시과

이 사건이 든 테마

  • 교육 기관의 변천372년 – 1943년

    태학과 국학, 국자감과 성균관에서 근대 학교와 조선 교육령까지 — 관리를 기르는 관학과 그 빈자리를 채운 사학

  • 개성901년 – 2003년

    송악의 호족 왕건에서 개성 공단까지 — 500년 고려의 도읍 개경, 송상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