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송악의 호족 왕건에서 개성 공단까지 — 500년 고려의 도읍 개경, 송상의 도시

David Clayton Ellsworth · CC BY-SA 4.0 · 원본
송악의 호족 왕건에서 개성 공단까지 — 500년 고려의 도읍 개경, 송상의 도시

David Clayton Ellsworth · CC BY-SA 4.0 · 원본
| 시대 | 사건 | 내용 |
|---|---|---|
| 후삼국 | 후고구려 건국 | 궁예, 송악에서 건국(901) |
| 고려 | 고려 건국 | 왕건, 이듬해 송악(개경) 천도 |
| 고려 | 벽란도 | 예성강 국제 무역항, 아라비아 상인 |
| 고려 | 최충의 9재 학당 | 사학 12도, 관학 위축 |
| 고려 | 이자겸의 난 | 척준경과 궁궐을 불태움 |
| 고려 | 무신 정변 | 보현원, 정중부·이의방 |
| 고려 | 만적의 난 | 개경 북산, 노비 신분 해방 꾀함 |
| 고려 | 개경 환도 | 강화도에서 돌아옴(1270), 원 간섭기 |
| 고려 | 경천사지 10층 석탑 | 원 영향, 대리석 다각 다층탑 |
| 고려 | 홍건적 2차 침입 | 개경 함락, 공민왕 복주(안동) 피란 |
| 고려 | 공민왕릉 | 현릉·정릉, 조선 왕릉의 본보기 |
| 고려 말 | 정몽주 피살 | 선죽교, 이방원 일파 |
| 조선 | 조선 건국 | 이성계, 개경 수창궁에서 즉위 |
| 조선 후기 | 송상 | 개성 상인, 송방·인삼 재배와 판매 |
| 6·25 전쟁 | 정전 회담 | 1951년 개성에서 시작 → 판문점 |
| 김대중·노무현 정부 | 개성 공단 | 6·15 선언 뒤 남북 경제 협력 |
양길의 부하로 일어나 강원·경기·황해도를 차지한 궁예가 901년 송악에서 후고구려를 세웠다.
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 등이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왕으로 추대했다. 왕건은 나라 이름을 고려, 연호를 천수라 했다.
예성강 어귀의 벽란도에 송·거란·여진·일본과 멀리 아라비아(대식국) 상인까지 드나들었다. 이때 "고려(Corea)"라는 이름이 서방에 알려졌다.
문하시중에서 물러난 최충이 9재 학당을 열자 사학 12도가 번성했다. 관학이 위축되자 숙종·예종·인종이 관학을 다시 일으켰다.
인종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인 이자겸이 척준경과 함께 궁궐을 불태우고 왕을 가두었다. 인종이 척준경을 회유해 이자겸을 몰아냈다.
문신에게 차별받던 정중부·이의방·이고 등 무신이 보현원에서 정변을 일으켜 문신을 죽이고 의종을 몰아냈다. 이후 100년 동안 무신 정권이 이어졌다.
최충헌의 사노비 만적이 개경에서 노비들을 모아 신분 해방과 정권 탈취를 꾀했으나, 밀고로 실패했다.
몽골과 강화를 맺은 고려가 무신 정권이 무너지자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도읍을 되돌렸다. 이로써 무신 정권 100년이 끝나고 원 간섭기가 시작되었다.
원의 영향을 받은 대리석 10층 석탑이 개풍 경천사에 세워졌다. 조선 세조 때의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영향을 주었다.
원 말 한족 반란군인 홍건적이 두 차례 고려에 쳐들어왔다. 2차 침입 때 개경이 함락되어 공민왕이 복주(안동)까지 피란했다.
공민왕과 노국 대장 공주의 쌍릉. 공민왕이 왕비의 무덤을 직접 꾸며 조성했고, 12지신 둘레돌과 문무인석이 조선 왕릉의 본보기가 되었다.
고려를 지키며 새 왕조 개창에 반대한 온건파 사대부 정몽주가 개경 선죽교에서 이방원 일파에게 죽었다. 석 달 뒤 이성계가 왕위에 올랐다.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웠다. 1394년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조선 후기 모내기법이 전국으로 퍼져 벼·보리 이모작과 광작이 가능해졌다. 인삼·담배 같은 상품 작물을 기르고, 장시가 1천여 곳으로 늘었다.
2년 넘는 회담 끝에 판문점에서 정전 협정이 맺어져 군사 분계선과 비무장 지대가 정해졌다.
6·15 남북 공동 선언 뒤 남한의 자본·기술과 북한의 땅·노동력을 결합한 공업 단지가 개성에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