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882년 6월 9일(음력)

임오군란

밀린 급료에 분노한 구식 군대가 들고일어나 일본 공사관을 공격했다. 흥선대원군이 잠시 다시 집권했으나 청군이 그를 붙잡아 갔다.

조선에서 달아나는 일본 공사관원 — 우타가와 구니마쓰, 1882년
조선에서 달아나는 일본 공사관원 — 우타가와 구니마쓰, 1882년

Utagawa Kunimatsu · Public domain · 원본

개화 정책으로 신식 군대 별기군을 우대하는 동안 구식 군인들은 13개월이나 급료를 받지 못했다. 겨우 받은 쌀에 겨와 모래가 섞여 있자 분노한 군인들은 선혜청 당상 민겸호의 집을 부수고, 일본 공사관을 공격해 별기군의 일본인 교관을 죽였다. 도시 하층민도 가세해 궁궐에 들어갔고, 왕비는 충주 장호원으로 피했다.

고종이 정권을 맡긴 흥선 대원군은 통리기무아문과 별기군을 없애고 5군영을 되살렸다. 그러나 청이 군대를 보내 대원군을 톈진으로 끌고 가고 민씨 정권을 다시 세웠다.

이후 청군이 서울에 머물고 마젠창과 묄렌도르프를 고문으로 보내 내정에 간섭했다.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으로 청 상인이 내륙까지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일본과는 제물포 조약을 맺어 배상금을 물고 공사관 경비병의 주둔을 허락했다.

지도에서 보기

1882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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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고종
청 · 점령군 — 광서제
일본 — 메이지 일왕

관련 인물

  • 흥선대원군1820년 – 1898년

    관련자 · 고종의 아버지. 섭정으로 경복궁을 다시 짓고 통상 수교를 거부했다

  • 명성황후1851년 – 1895년

    관련자 · 고종의 왕비. 일본 세력을 견제하다 을미사변으로 경복궁에서 시해되었다

  • 고종1852년 – 1919년

    군주 ·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첫 황제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이후 사건
1882년 제물포 조약

이 사건이 든 테마

  • 군사 제도의 변천685년 – 1907년

    9서당 10정에서 2군 6위, 5위와 진관, 5군영, 원수부까지 — 전쟁의 위기마다 새로 꾸린 군대

  • 서울기원전 18년 – 1988년

    한성 백제에서 6월 민주 항쟁까지 — 한강을 차지한 나라가 이긴 땅, 조선 500년의 도읍

  • 충주450년 – 1895년

    고구려비에서 탄금대까지 — 남한강 물길의 한가운데, 삼국이 다툰 중원의 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