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군란
밀린 급료에 분노한 구식 군대가 들고일어나 일본 공사관을 공격했다. 흥선대원군이 잠시 다시 집권했으나 청군이 그를 붙잡아 갔다.

Utagawa Kunimatsu · Public domain · 원본
개화 정책으로 신식 군대 별기군을 우대하는 동안 구식 군인들은 13개월이나 급료를 받지 못했다. 겨우 받은 쌀에 겨와 모래가 섞여 있자 분노한 군인들은 선혜청 당상 민겸호의 집을 부수고, 일본 공사관을 공격해 별기군의 일본인 교관을 죽였다. 도시 하층민도 가세해 궁궐에 들어갔고, 왕비는 충주 장호원으로 피했다.
고종이 정권을 맡긴 흥선 대원군은 통리기무아문과 별기군을 없애고 5군영을 되살렸다. 그러나 청이 군대를 보내 대원군을 톈진으로 끌고 가고 민씨 정권을 다시 세웠다.
이후 청군이 서울에 머물고 마젠창과 묄렌도르프를 고문으로 보내 내정에 간섭했다.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으로 청 상인이 내륙까지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일본과는 제물포 조약을 맺어 배상금을 물고 공사관 경비병의 주둔을 허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