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고구려비에서 탄금대까지 — 남한강 물길의 한가운데, 삼국이 다툰 중원의 고장

고구려비에서 탄금대까지 — 남한강 물길의 한가운데, 삼국이 다툰 중원의 고장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의 충주에 세운 비석. 한반도에 남은 유일한 고구려 비석으로,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까지 내려와 신라에 영향력을 미쳤음을 보여 준다.
장수왕이 3만 군사로 백제의 도읍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죽였다. 백제는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겼다.
신문왕이 전국을 9주로 나누고 5소경을 두어 통일 신라의 지방 제도를 완성했다.
몽골의 5차 침입 때 김윤후가 충주성을 70여 일 동안 지켜 냈다. 관노비의 노비 문서를 불태워 신분 해방을 약속하자 성안 사람들이 힘을 다해 싸웠다.
태종 때 태조실록을 엮으면서 왕이 죽으면 그 왕의 실록을 편찬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을 편년체로 적었다.
신립이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군에 맞섰으나 크게 져 전사했다. 충주가 무너지자 선조는 한양을 떠나 피란했다.
밀린 급료에 분노한 구식 군대가 들고일어나 일본 공사관을 공격했다. 흥선대원군이 잠시 다시 집권했으나 청군이 그를 붙잡아 갔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분노한 유인석·이소응 등 유생이 의병을 일으켰다. 아관파천 뒤 고종이 해산을 권하자 대부분 흩어졌다.

승려 출신 장수. 1232년 처인성에서 몽골 장수 살리타를 쏘아 죽였고, 1253년 충주성을 70여 일 지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