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010년 11월 – 1011년 1월(음력)
거란의 2차 침입
거란 성종이 40만 대군으로 쳐들어와 개경을 함락했다. 현종은 나주까지 피란했고, 양규가 물러나는 적을 쳐 포로를 구했다.
흥화진은 양규가 지켜 냈지만, 통주에서 강조가 이끄는 고려군이 크게 졌다. 사로잡힌 강조는 거란 성종의 신하가 되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죽었다. 1011년 1월 거란군이 개경을 불태웠고, 현종은 나주까지 피란했다.
하공진이 거란 진영에 가서 화의를 청했고, 거란은 현종이 직접 거란에 와서 예를 갖추겠다는 약속(친조)을 받고 물러났다. 양규와 김숙흥은 물러나는 거란군을 잇달아 쳐서 포로 3만여 명을 구했으나 끝내 전사했다. 현종이 친조 약속을 지키지 않아 3차 침입(1018)으로 이어졌다. 전쟁 중 현종은 초조대장경을 새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