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분쟁1597년 12월 22일 – 1598년 1월 4일(음력)

울산성 전투

다른 이름: 도산성 전투, 울산 왜성 전투

조명 연합군 5만여 명이 가토 기요마사가 쌓던 울산왜성(도산성)을 에워쌌다. 성 안은 물과 먹을 것이 떨어졌지만, 일본 원군이 오자 연합군이 물러났다.

1597년 12월 명나라 경리 양호와 제독 마귀, 도원수 권율이 이끈 조명 연합군이 울산의 도산에 쌓던 일본식 성을 쳤다. 성은 아직 다 쌓지 못한 상태였고, 가토 기요마사는 급히 들어가 버텼다. 12월 22일부터 열흘 넘게 에워싸는 동안 성 안은 물이 떨어져 말을 잡아 피를 마시고 종이를 씹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연합군도 한겨울 추위와 비에 시달렸고, 성벽을 넘지 못했다. 1598년 1월 초 모리 히데모토 등의 일본 원군이 다가오자 연합군은 큰 손실을 입고 물러났다. 9월 연합군이 다시 울산을 쳤으나(사로병진) 이번에도 무너뜨리지 못했다.

지도에서 보기

1597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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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조선 · 교전국 — 선조
명 · 원군 — 만력제
일본 · 교전국
관련 장소
울산왜성 (도산성)

관련 인물

  • 양호1629년

    지휘관 · 명나라 경리(총책임자). 정유재란 때 명군을 이끌고 울산왜성을 에워쌌다

  • 권율1537년 – 1599년

    지휘관 · 조선의 장수.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을 크게 물리치고 도원수가 되었다

  • 가토 기요마사1562년 – 1611년

    지휘관 · 일본군 제2번대를 이끈 장수. 함경도까지 올라가 두 왕자를 사로잡았고, 정유재란 때 울산왜성에서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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