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경제와 사회 변동
영정법·대동법·균역법, 모내기법과 장시·상평통보, 신해통공, 신분제의 동요 — 서얼·중인의 통청 운동과 공노비 해방
이 테마는 한국사의 흐름을 지도로 익히도록 돕는 참고용입니다. 시험 범위·출제 경향과 다를 수 있으니, 실제 시험 준비는 교과서와 검증된 교재로 해 주세요.
영정법·대동법·균역법, 모내기법과 장시·상평통보, 신해통공, 신분제의 동요 — 서얼·중인의 통청 운동과 공노비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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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모내기법이 전국으로 퍼져 벼·보리 이모작과 광작이 가능해졌다. 인삼·담배 같은 상품 작물을 기르고, 장시가 1천여 곳으로 늘었다.
집집마다 특산물을 바치던 공납을 땅에 따라 쌀로 내게 했다. 경기도에서 시작해 100년 걸려 전국으로 넓혔다.
인조가 풍흉에 관계없이 전세를 토지 1결당 쌀 4~6두로 고정하는 영정법을 실시했다.
숙종이 허적 등의 건의로 상평통보를 나라의 법화로 정하고 널리 주조했다. 18세기 후반에는 전국에서 쓰였다.
동래부 두모포에 있던 왜관을 초량으로 옮겨 크게 지었다. 조선 후기 일본과의 무역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양인 남자가 해마다 내던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였다. 모자란 재정은 어염세·결작 등으로 메웠다.
조선 후기 서얼과 중인이 관직 진출의 차별을 없애 달라고 집단 상소를 올렸다. 서얼은 정조 때 길이 넓어지고 1851년 크게 허통되었다.
정조가 채제공의 건의를 받아 육의전을 뺀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없앴다. 사상(私商)의 자유로운 활동이 넓어졌다.
제주에 큰 흉년이 들자 여성 상인 김만덕이 재산을 털어 육지의 쌀을 사다 굶주린 백성을 살렸다. 정조가 그를 한양으로 불러 소원을 들어주었다.
순조가 내수사와 중앙 관청에 딸린 공노비 6만 6천여 명을 양인으로 풀어 주었다. 조선 후기 신분제가 흔들리던 흐름을 보여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