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시험 대비1600년 – 1801년10건

조선 후기의 경제와 사회 변동

영정법·대동법·균역법, 모내기법과 장시·상평통보, 신해통공, 신분제의 동요 — 서얼·중인의 통청 운동과 공노비 해방

이 테마는 한국사의 흐름을 지도로 익히도록 돕는 참고용입니다. 시험 범위·출제 경향과 다를 수 있으니, 실제 시험 준비는 교과서와 검증된 교재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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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의 사건 10건

  1. 조선 후기 모내기법이 전국으로 퍼져 벼·보리 이모작과 광작이 가능해졌다. 인삼·담배 같은 상품 작물을 기르고, 장시가 1천여 곳으로 늘었다.

  2. 집집마다 특산물을 바치던 공납을 땅에 따라 쌀로 내게 했다. 경기도에서 시작해 100년 걸려 전국으로 넓혔다.

  3. 인조가 풍흉에 관계없이 전세를 토지 1결당 쌀 4~6두로 고정하는 영정법을 실시했다.

  4. 숙종이 허적 등의 건의로 상평통보를 나라의 법화로 정하고 널리 주조했다. 18세기 후반에는 전국에서 쓰였다.

  5. 동래부 두모포에 있던 왜관을 초량으로 옮겨 크게 지었다. 조선 후기 일본과의 무역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6. 양인 남자가 해마다 내던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였다. 모자란 재정은 어염세·결작 등으로 메웠다.

  7. 조선 후기 서얼과 중인이 관직 진출의 차별을 없애 달라고 집단 상소를 올렸다. 서얼은 정조 때 길이 넓어지고 1851년 크게 허통되었다.

  8. 정조가 채제공의 건의를 받아 육의전을 뺀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없앴다. 사상(私商)의 자유로운 활동이 넓어졌다.

  9. 제주에 큰 흉년이 들자 여성 상인 김만덕이 재산을 털어 육지의 쌀을 사다 굶주린 백성을 살렸다. 정조가 그를 한양으로 불러 소원을 들어주었다.

  10. 순조가 내수사와 중앙 관청에 딸린 공노비 6만 6천여 명을 양인으로 풀어 주었다. 조선 후기 신분제가 흔들리던 흐름을 보여 준다.

주요 인물

  • 정조1752년 – 1800년

    조선 제22대 왕. 규장각을 세우고 수원 화성을 쌓았다

  • 숙종1661년 – 1720년

    조선 제19대 왕. 잦은 환국으로 왕권을 세웠고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

  • 광해군1575년 – 1641년

    조선 제15대 왕. 대동법을 시작하고 명·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폈으나 인조반정으로 쫓겨났다

  • 이원익1547년 – 1634년

    광해군 때 영의정으로 대동법 시행을 건의했다

  • 김육1580년 – 1658년

    효종 때의 영의정. 대동법을 충청도·전라도로 넓히고, 시헌력 채택과 상평통보 주조를 건의했다

  • 인조1595년 – 1649년

    조선 제16대 왕. 반정으로 즉위했고, 정묘·병자 두 호란을 겪고 삼전도에서 항복했다

  • 허적1610년 – 1680년

    남인의 영의정. 상평통보를 다시 주조해 널리 쓰게 했다. 경신환국 때 쫓겨나 사약을 받았다

  • 영조1694년 – 1776년

    조선 제21대 왕. 탕평책과 균역법을 폈고,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게 했다

  • 철종1831년 – 1863년

    조선 제25대 왕. 강화도에 살다가 안동 김씨의 추대로 왕이 되었다(강화도령). 임술 농민 봉기 뒤 삼정이정청을 두었다

  • 박제가1750년 – 1805년

    북학파 실학자. 서얼 출신으로 규장각 검서관이 되었다. 북학의에서 청의 문물을 배우고 소비를 늘려 생산을 자극하자고 했다

  • 유득공1748년 – 1807년

    서얼 출신의 규장각 검서관. 발해고를 써 발해를 우리 역사에 넣고 "남북국"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

  • 채제공1720년 – 1799년

    정조가 아낀 남인 재상. 신해통공을 건의해 육의전을 뺀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없앴고, 수원 화성 축성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