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정조가 꿈꾼 새 도시 화성에서 제암리의 비극까지 — 효심과 개혁 정치가 성곽으로 남은 고장

d'n'c (a flickr user) · CC BY-SA 2.0 · 원본
정조가 꿈꾼 새 도시 화성에서 제암리의 비극까지 — 효심과 개혁 정치가 성곽으로 남은 고장

d'n'c (a flickr user) · CC BY-SA 2.0 · 원본
왕실의 혼례·장례·책봉·건축 같은 큰 행사를 그림과 글로 자세히 남긴 기록으로, 2007년 세계 기록 유산이 되었다.
영조가 세자를 폐하고 창경궁 문정전 앞 뒤주에 가두었다. 사도세자는 여드레 만에 숨졌다.
정조가 왕의 친위 부대 장용영을 두어 도성에 내영, 수원 화성에 외영을 설치했다. 초계문신제로 젊은 관리를 다시 교육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긴 수원에 새 성을 쌓았다. 정약용이 설계에 참여하고 거중기를 썼으며, 공사 기록은 화성성역의궤로 남았다.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아버지 사도 세자의 무덤 현륭원이 있는 화성에 다녀왔다. 행차의 모든 과정을 "원행을묘정리의궤"와 화성능행도 병풍으로 남겼다.
1919년 3월 1일, 독립 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일본군이 화성 제암리 주민들을 교회에 모아 놓고 총을 쏘고 불을 질러 20여 명을 죽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