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1601년 – 1919년7건

수원

정조가 꿈꾼 새 도시 화성에서 제암리의 비극까지 — 효심과 개혁 정치가 성곽으로 남은 고장

수원 화성 화서문 — 정조 때(1794~1796) 쌓은 화성의 서문
수원 화성 화서문 — 정조 때(1794~1796) 쌓은 화성의 서문

d'n'c (a flickr user) · CC BY-SA 2.0 · 원본

지도에서 보기

한눈에 비교

시대사건내용
조선화성성역의궤거중기 그림·공사 기록, 복원의 근거
조선 후기사도 세자의 죽음임오화변(1762) → 1789년 수원 현륭원 이장
조선 후기장용영정조의 친위 부대, 화성에 외영
조선 후기수원 화성 축성정약용 설계·거중기, 세계 유산
조선 후기정조의 화성 행차혜경궁 회갑, 배다리, 원행을묘정리의궤
일제 강점기3·1 운동수원·화성 일대 만세 시위
일제 강점기제암리 학살발안 만세 시위 보복, 교회에 가두고 방화

지도로 보는 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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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의 사건 7건

  1. 왕실의 혼례·장례·책봉·건축 같은 큰 행사를 그림과 글로 자세히 남긴 기록으로, 2007년 세계 기록 유산이 되었다.

  2. 영조가 세자를 폐하고 창경궁 문정전 앞 뒤주에 가두었다. 사도세자는 여드레 만에 숨졌다.

  3. 정조가 왕의 친위 부대 장용영을 두어 도성에 내영, 수원 화성에 외영을 설치했다. 초계문신제로 젊은 관리를 다시 교육했다.

  4. 1794년 – 1796년수원 화성 축성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긴 수원에 새 성을 쌓았다. 정약용이 설계에 참여하고 거중기를 썼으며, 공사 기록은 화성성역의궤로 남았다.

  5.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아버지 사도 세자의 무덤 현륭원이 있는 화성에 다녀왔다. 행차의 모든 과정을 "원행을묘정리의궤"와 화성능행도 병풍으로 남겼다.

  6. 1919년 3월 1일, 독립 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7. 일본군이 화성 제암리 주민들을 교회에 모아 놓고 총을 쏘고 불을 질러 20여 명을 죽였다.

주요 인물

  • 정조1752년 – 1800년

    조선 제22대 왕. 규장각을 세우고 수원 화성을 쌓았다

  • 영조1694년 – 1776년

    조선 제21대 왕. 탕평책과 균역법을 폈고,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게 했다

  • 사도세자1735년 – 1762년

    영조의 아들, 정조의 아버지. 뒤주에 갇혀 죽었다

  • 정약용1762년 – 1836년

    다산. 화성 설계에 참여한 실학자. 신유박해로 강진에 유배되어 목민심서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