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e Yong-sin / Jo Seokjin · Public domain · 원본
영조
조선 제21대 왕. 탕평책과 균역법을 폈고,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게 했다
이인좌의 난을 겪은 뒤 붕당의 뿌리를 없애고자 탕평책을 폈고, 1742년 성균관 앞에 탕평비를 세웠다. 붕당의 근거지가 된 서원을 정리하고, 이조 전랑의 후임자 추천 권한을 없앴다. 1750년 균역법으로 군포를 1년에 2필에서 1필로 줄였다. 속대전을 편찬하고, 신문고를 다시 두었으며, 청계천을 준설했다. 1762년 아들 사도세자가 죽은 사건을 임오화변이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