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35년 7월

민족 혁명당

의열단·한국 독립당·조선 혁명당 등이 난징에서 민족 혁명당을 만들었다. 중국 관내 독립운동 세력을 하나로 묶으려는 민족 유일당 운동의 결실이었다.

민족 혁명당을 이끈 김원봉 — 1930년대
민족 혁명당을 이끈 김원봉 — 1930년대

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원본

1935년 7월 김원봉의 의열단을 중심으로 조소앙의 한국 독립당, 지청천 계열의 신한 독립당, 조선 혁명당, 대한 독립당이 모여 결성되었다. 김규식도 참여했다.

그러나 의열단 계열이 주도권을 쥐자 조소앙·지청천 등 민족주의 계열이 빠져나갔다. 임시 정부를 지키던 김구는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고 한국 국민당(1935)을 만들었다. 민족 혁명당은 1937년 조선 민족 혁명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조선 민족 전선 연맹을 결성해 조선 의용대를 만들었다. 김구 쪽은 한국 광복 운동 단체 연합회로 맞섰고, 1940년 김구·조소앙·지청천 계열이 한국 독립당으로 합쳐 임시 정부를 뒷받침했다.

지도에서 보기

1935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
중화민국
관련 장소
난징

관련 인물

  • 김원봉1898년 – 1958년

    주도자 · 의열단 단장. 민족 혁명당을 이끌고 조선 의용대를 만들었다.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 조소앙1887년 – 1958년

    참여자 ·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말한 삼균주의를 세웠다. 대한민국 건국 강령의 바탕이 되었다

  • 지청천1888년 – 1957년

    참여자 · 한국 독립군 총사령관으로 한중 연합 작전을 이끌었다.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 김규식1881년 – 1950년

    참여자 · 신한 청년당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갔다. 민족 혁명당에 참여했고 임시 정부 부주석을 지냈다

  • 김구1876년 – 1949년

    관련자 · 호는 백범. 한인 애국단을 만들고 임시 정부 주석으로 한국광복군을 이끌었다. "백범일지"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34년 대장정
이후 사건
1936년 시안 사건

이 사건이 든 테마

  • 중화민국과 일본 제국주의1912년 – 1949년

    신해혁명으로 선 중화민국이 군벌 분열·5·4 운동·국공 합작과 북벌을 거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국공 내전으로 갈라진 시대 — 일본은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만주 사변·군부 쿠데타를 거쳐 중일 전쟁과 대동아 공영권으로 치달았고, 식민지 한국은 3·1 운동과 무장 독립 투쟁으로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