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다른 이름: 백범
호는 백범. 한인 애국단을 만들고 임시 정부 주석으로 한국광복군을 이끌었다. "백범일지"
호는 백범. 황해도 해주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동학에 들어가 1894년 해주성 공격에 앞장섰다. 1896년 치하포에서 명성황후 시해의 원수를 갚는다며 일본인을 죽여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고종의 특명으로 집행이 멈추었고 뒤에 탈옥했다. 이후 황해도에서 학교를 세우며 교육 운동을 펴다 신민회에 들어갔고, 1911년 안악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1919년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경무국장이 되었고, 뒤에 국무령·주석을 지내며 어려운 시기의 임시 정부를 지켰다. 1931년 한인 애국단을 만들어 이봉창·윤봉길의 의거를 이끌었고, 이를 계기로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얻었다. 1940년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했다.
1945년 11월 귀국해 신탁 통치 반대 운동을 이끌었고, 1948년 남북 협상을 위해 평양에 가는 등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했다. 1949년 6월 26일 서울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에 맞아 서거했다. 자서전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썼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