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봉
의열단 단장. 민족 혁명당을 이끌고 조선 의용대를 만들었다.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호는 약산. 경상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주의 신흥 무관 학교에서 잠시 배운 뒤, 그해 11월 지린에서 윤세주 등 동지들과 의열단을 만들고 단장이 되었다. 조선 총독부 고관·친일파 등 일곱 부류의 처단 대상(칠가살)과 총독부·경찰서 등 다섯 곳의 파괴 대상(오파괴)을 정해 일제의 기관과 요인을 겨냥했다.
의열단은 부산 경찰서(박재혁)·밀양 경찰서(최수봉)·조선 총독부(김익상)·종로 경찰서(김상옥)·동양 척식 주식회사(나석주)에 폭탄을 던졌고, 1923년 신채호가 지은 「조선 혁명 선언」을 행동 지침으로 삼았다. 개별 의거의 한계를 느껴 1926년 황푸 군관 학교에 들어갔고, 1932년 난징에 조선 혁명 군사 정치 간부 학교를 세워 이육사 등을 길렀다. 1935년 민족 혁명당을 만들고, 1938년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으로 한커우에서 조선 의용대를 창설했다.
1942년 조선 의용대 일부를 이끌고 한국광복군에 합류해 부사령관이 되었고, 1944년 임시 정부의 군무부장을 맡았다. 1945년 12월 귀국했으나 좌우 대립 속에서 뜻을 펴지 못했다. 1948년 남북 협상 때 북한으로 가서 남아 국가 검열상·노동상을 지냈으나 1958년 무렵 숙청되었다. 북한 정권에서 일한 까닭에 대한민국 정부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