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907년 4월 – 1911년

신민회

안창호·양기탁 등이 비밀 결사 신민회를 만들었다. 국권 회복과 공화정체의 근대 국가 수립을 목표로 교육·산업을 일으키고 국외 독립운동 기지를 세웠다.

105인 사건으로 끌려가는 양기탁·윤치호 등 — 신민회가 무너진 1911년
105인 사건으로 끌려가는 양기탁·윤치호 등 — 신민회가 무너진 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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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법(1907) 등으로 공개 활동이 막히자 비밀 결사로 조직했다. 대성 학교(평양)·오산 학교(정주)를 세우고, 태극 서관과 자기 회사를 운영해 민족 교육과 민족 산업을 일으켰다. 대한매일신보를 사실상 기관지로 삼았다.

실력 양성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무장 투쟁도 준비해, 서간도 삼원보에 경학사와 신흥 강습소(뒤의 신흥 무관 학교)를 세웠다(1911). 1911년 일제가 꾸민 105인 사건으로 조직이 드러나 해체되었다.

지도에서 보기

1907년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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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라와 지도자
대한제국 — 고종

관련 인물

  • 안창호1878년 – 1938년

    주도자 · 신민회를 만들고 미국에서 흥사단을 세웠다. 임시 정부 내무총장으로 연통제를 실시했다

  • 양기탁1871년 – 1938년

    주도자 · 대한매일신보를 베델과 함께 펴냈고, 국채 보상 운동과 신민회를 이끌었다

  • 이승훈1864년 – 1930년

    참여자 · 신민회 회원으로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세웠다.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3·1 운동 때 기독교 쪽 민족 대표였다

  • 이동녕1869년 – 1940년

    참여자 · 신민회 회원. 서간도에서 신흥 강습소를 세우는 데 참여했고, 임시 의정원 의장과 임시 정부 국무령·주석을 지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07년 국채 보상 운동
이후 사건
1907년 헤이그 특사

이 사건이 든 테마

  • 평양기원전 194년 – 2007년

    고조선 왕검성에서 남북 정상 회담까지 — 고구려의 도읍이자 고려의 서경, 대동강 가의 북쪽 중심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