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석
북로 군정서의 장교로 청산리 전투에서 싸웠다. 한국광복군 참모장·제2지대장을 지냈다
신흥 무관 학교 교관을 지냈고, 1920년 북로 군정서의 연성대장으로 김좌진과 함께 청산리 전투에서 싸웠다. 1940년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참모장이 되었고, 제2지대장으로 미국 전략 정보국(OSS)과 함께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광복 뒤 조선 민족 청년단을 만들었고,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북로 군정서의 장교로 청산리 전투에서 싸웠다. 한국광복군 참모장·제2지대장을 지냈다
신흥 무관 학교 교관을 지냈고, 1920년 북로 군정서의 연성대장으로 김좌진과 함께 청산리 전투에서 싸웠다. 1940년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참모장이 되었고, 제2지대장으로 미국 전략 정보국(OSS)과 함께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광복 뒤 조선 민족 청년단을 만들었고,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김좌진의 북로 군정서군과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 등이 청산리 일대에서 6일 동안 10여 차례 싸워 일본군에 크게 이겼다. 독립 전쟁사에서 가장 큰 승리다.
충칭에 자리 잡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한국광복군을 창설했다. 총사령관은 지청천이었고, 1942년 조선 의용대가 합류했다.
한국광복군이 미국 전략 정보국(OSS)과 손잡고 특수 훈련을 받으며 국내로 들어갈 작전을 준비했다. 일본이 먼저 항복해 실행하지 못했다.
전시 동원과 수탈, 독립운동의 군대, 카이로 선언에서 광복까지
신해혁명으로 선 중화민국이 군벌 분열·5·4 운동·국공 합작과 북벌을 거쳐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국공 내전으로 갈라진 시대 — 일본은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만주 사변·군부 쿠데타를 거쳐 중일 전쟁과 대동아 공영권으로 치달았고, 식민지 한국은 3·1 운동과 무장 독립 투쟁으로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