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1912년 4월 14일 – 15일

타이타닉호 침몰

다른 이름: 타이타닉, 타이타닉 침몰

1912년 4월 14일 밤 처녀항해 중이던 영국의 여객선 타이타닉이 북대서양에서 빙산에 부딪쳐 이튿날 새벽 가라앉았다. 2,200여 명 가운데 1,500명 넘게 숨졌다.

「타이타닉의 침몰」 — 빌리 슈퇴버 그림, 1912년
「타이타닉의 침몰」 — 빌리 슈퇴버 그림, 1912년

Willy Stöwer · Public domain · 원본

화이트 스타 라인의 타이타닉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배였고, 물이 새지 않는 칸막이로 「가라앉지 않는 배」라 불렸다. 1912년 4월 10일 사우샘프턴을 떠나 뉴욕으로 가던 배는 14일 하루 동안 여러 배에서 빙산 경고를 받았지만 속력을 거의 줄이지 않았다.

밤 11시 40분, 뉴펀들랜드 남쪽 바다에서 망루의 선원이 바로 앞의 빙산을 보았다. 배는 피하려 돌았지만 오른쪽 옆구리가 빙산에 긁혀 앞쪽 다섯 칸에 물이 들어왔다. 네 칸까지만 견디게 지은 배였다. 구명보트는 스무 척, 다 태워도 1,178명분이었고, 처음 내린 보트들은 반쯤 빈 채로 떠났다.

15일 새벽 2시 20분 배는 두 동강 나며 가라앉았다. 영하 2도의 바다에서 1,500명 넘게 숨졌다. 조난 신호를 받고 달려온 카르파티아가 새벽 4시 무렵부터 구명보트의 710명 남짓을 건졌다. 이 일로 모든 사람을 태울 구명보트, 밤낮없는 무선 당직, 북대서양의 빙산 순찰을 정한 국제 해상 인명 안전 협약(SOLAS)이 생겼다.

지도에서 보기

1912년의 지도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당시 나라와 지도자
영국
미국 — 대통령 윌리엄 태프트
관련 장소
타이타닉 잔해

관련 인물

  • 에드워드 스미스1850년 – 1912년

    지휘관 · 화이트 스타 라인의 선장. 타이타닉의 처녀항해를 이끌었고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 토머스 앤드루스1873년 – 1912년

    참여자 · 할랜드 앤드 울프 조선소의 설계 책임자. 처녀항해에 함께 올랐다가, 배가 가라앉을 것을 가장 먼저 알고 승객을 구하다 숨졌다

하위 사건 5건

  1. 1

    1911년 5월 31일 벨파스트의 할랜드 앤드 울프 조선소에서 길이 269m 의 타이타닉이 물에 처음 띄워졌다.

  2. 2

    1912년 4월 10일 타이타닉이 사우샘프턴을 떠나 셰르부르와 퀸스타운에 들른 뒤, 11일 2,200여 명을 태우고 뉴욕을 향해 대서양으로 나갔다.

  3. 3

    타이타닉의 조난 신호를 받은 커나드의 카르파티아가 빙산 사이로 달려와 1912년 4월 15일 새벽 구명보트의 생존자 710명 남짓을 건져 18일 밤 뉴욕에 내렸다.

  4. 4

    타이타닉 침몰 뒤 미국 상원과 영국의 청문회를 거쳐, 1914년 1월 20일 런던에서 첫 국제 해상 인명 안전 협약(SOLAS)이 맺어졌다. 모든 사람을 태울 구명보트, 밤낮없는 무선 당직, 북대서양의 빙산 순찰을 정했다.

  5. 5

    1985년 9월 1일 미국의 로버트 밸러드와 프랑스의 장루이 미셸이 이끈 탐사대가 수심 3,800m 의 대서양 바닥에서 타이타닉의 잔해를 찾아냈다.

앞뒤 사건

이전 사건
1911년 보로 운동
이후 사건
1917년 밸푸어 선언

이 사건이 든 테마

  • 타이타닉1911년 – 1985년

    「가라앉지 않는 배」의 진수에서 처녀항해, 빙산과의 충돌, 카르파티아의 구조, 바다의 규칙을 바꾼 국제 협약, 70여 년 뒤 대서양 바닥에서 찾아낸 잔해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