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탐험
쿡이 남극권을 넘은 1773년부터 대륙을 처음 본 사람들, 로스의 얼음벽, 아문센과 스콧의 남극점 경주, 섀클턴의 인듀어런스호, 남극 조약과 오존 구멍, 세종과학기지까지 — 얼음 대륙을 향한 200년

Frank Hurley · Public domain · 원본
쿡이 남극권을 넘은 1773년부터 대륙을 처음 본 사람들, 로스의 얼음벽, 아문센과 스콧의 남극점 경주, 섀클턴의 인듀어런스호, 남극 조약과 오존 구멍, 세종과학기지까지 — 얼음 대륙을 향한 200년

Frank Hurley · Public domain · 원본
두 번째 항해에 나선 제임스 쿡의 레절루션호와 어드벤처호가 사람으로는 처음 남극권(남위 66.5도)을 넘었다. 쿡은 얼음에 막혀 대륙을 보지 못했다.
1820년 1월, 러시아의 벨링스하우젠과 영국의 브랜스필드가 며칠 사이로 남극 대륙의 얼음 해안과 땅을 보았다. 누가 처음인지는 지금도 나라마다 다르게 말한다.
영국의 제임스 클라크 로스가 에러버스호와 테러호로 남극의 깊은 바다(로스해)에 들어가, 연기를 뿜는 화산 에러버스산과 바다를 가로막은 거대한 얼음벽(로스 빙붕)을 찾았다.
영국의 로버트 스콧 일행 다섯 명이 1912년 1월 17일 남극점에 닿았지만, 아문센의 노르웨이 깃발이 먼저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다섯 명 모두 추위와 굶주림으로 숨졌다.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과 네 동료가 개썰매로 사람으로는 처음 남극점에 닿았다. 한 달 남짓 뒤에 닿은 영국의 스콧 일행은 돌아오는 길에 모두 숨졌다.
남극 대륙을 걸어서 가로지르려던 섀클턴의 인듀어런스호가 웨델해의 얼음에 갇혀 부서졌다. 대원 28명은 얼음 위와 작은 보트로 1년 반을 버틴 끝에 한 사람도 잃지 않고 모두 살아 돌아왔다.
남극에 기지를 둔 12개 나라가 워싱턴에서 남극 조약을 맺었다. 남극을 평화와 과학을 위해서만 쓰고, 영토 주장을 얼려 두고, 군사 활동과 핵폭발을 금지했다.
영국 남극 조사소의 과학자들이 남극 상공의 오존이 봄마다 크게 줄어든다는 것을 발표했다. 프레온 가스를 줄이는 몬트리올 의정서(1987)로 이어졌다.
남극 킹조지섬에 한국의 첫 남극 기지인 세종과학기지가 세워졌다. 2014년에는 남극 대륙 안에 두 번째 기지인 장보고과학기지가 섰다.




노르웨이의 극지 탐험가. 북서 항로를 처음 배로 지났고, 1911년 12월 14일 사람으로는 처음 남극점에 닿았다. 1928년 북극에서 실종된 동료를 찾으러 날아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