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의 변천
고인돌에서 공민왕릉까지 — 돌무지무덤·돌무지덧널무덤·굴식 돌방무덤·벽돌무덤, 나라와 시대마다 달라진 무덤 양식

J. Patrick Fischer · CC BY-SA 3.0 · 원본
고인돌에서 공민왕릉까지 — 돌무지무덤·돌무지덧널무덤·굴식 돌방무덤·벽돌무덤, 나라와 시대마다 달라진 무덤 양식

J. Patrick Fischer · CC BY-SA 3.0 · 원본
| 무덤 | 시대·나라 | 양식 | 특징 |
|---|---|---|---|
| 고인돌 | 청동기 시대 | 탁자식·바둑판식 | 지배층 무덤, 계급 발생. 강화·고창·화순 세계 유산 |
| 김해 대성동 고분군 | 금관가야 3~5세기 | 덧널무덤 | 덩이쇠·갑옷, 북방·왜 유물. 가야 고분군 세계 유산 |
| 서울 석촌동 고분군 | 한성 백제 3~4세기 | 계단식 돌무지무덤 | 고구려와 같은 양식 → 건국 세력이 고구려 계통 |
| 장군총 | 고구려 5세기 무렵 (지안) | 계단식 돌무지무덤 | 화강암 7층, 장수왕릉 견해 |
| 황남대총 | 신라 5세기 | 돌무지덧널무덤 (쌍무덤) | 신라 최대, 금관·서역 유리그릇 |
| 천마총 | 신라 5세기 말~6세기 초 | 돌무지덧널무덤 | 천마도 장니·금관. 도굴 어렵고 벽화 없음 |
| 고령 지산동 고분군 | 대가야 5~6세기 | 구덩식 돌덧널무덤 | 44호분 순장, 금동관 |
| 무령왕릉 | 백제(웅진) 525 | 벽돌무덤 | 남조 양의 영향, 지석으로 주인 확실 |
| 강서대묘 | 고구려 6세기 말~7세기 초 | 굴식 돌방무덤 | 사신도 벽화, 도굴 쉬움 |
| 김유신 묘 | 통일 신라 | 굴식 돌방무덤 (봉토) | 둘레돌에 12지신상 → 괘릉·조선 왕릉으로 |
| 정혜·정효 공주 묘 | 발해 780·792 | 굴식 돌방(모줄임 천장) · 벽돌무덤 | 정혜는 고구려 양식, 정효는 당 양식 |
| 공민왕릉(현릉·정릉) | 고려 1365–1374 (개성) | 쌍릉 | 12지신 둘레돌·문무인석 → 조선 왕릉의 본보기 |
기원전 2000~1500년 무렵 청동기가 쓰이기 시작했다. 벼농사가 시작되고 사유 재산과 계급이 생겨 군장이 다스리는 사회가 나타났다.
금관가야 지배층의 무덤들. 덧널무덤에서 덩이쇠·갑옷과 북방·왜의 유물이 함께 나왔다.
한성 백제의 왕릉급 무덤들. 고구려와 같은 계단식 돌무지무덤이 있어 백제 건국 세력이 고구려 계통임을 보여 준다.
신라 최대의 고분. 남분과 북분이 붙은 쌍무덤(돌무지덧널무덤)으로, 북분에서 금관, 남분에서 서역 유리그릇이 나왔다.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지린성 지안)에 있는 계단식 돌무지무덤. 다듬은 화강암을 7층으로 쌓았고, 장수왕의 무덤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1973년 발굴한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을 그린 천마도 장니와 금관이 나왔다.
대가야 왕과 지배층의 무덤들. 44호분은 수십 명을 함께 묻은 순장 무덤이다.
무령왕이 523년 죽자 525년 공주 송산리에 벽돌무덤을 만들어 묻었다. 1971년 도굴되지 않은 채로 발견되었다.
고구려 후기의 굴식 돌방무덤. 돌방 네 벽에 사신도(청룡·백호·주작·현무)를 그렸다.
김유신의 무덤으로 전하는 통일 신라의 무덤. 둘레돌에 평복 차림으로 무기를 든 12지신상을 새겼다.
문왕의 두 딸 정혜 공주(780년 장례)와 정효 공주(792년 장례)의 무덤. 고구려와 당의 문화를 함께 보여 준다.
공민왕과 노국 대장 공주의 쌍릉. 공민왕이 왕비의 무덤을 직접 꾸며 조성했고, 12지신 둘레돌과 문무인석이 조선 왕릉의 본보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