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식민 통치
1910년대 무단 통치와 토지 조사 사업, 1920년대 문화 통치와 산미 증식 계획, 1930년대 이후 민족 말살 통치와 전시 수탈
이 테마는 한국사의 흐름을 지도로 익히도록 돕는 참고용입니다. 시험 범위·출제 경향과 다를 수 있으니, 실제 시험 준비는 교과서와 검증된 교재로 해 주세요.
1910년대 무단 통치와 토지 조사 사업, 1920년대 문화 통치와 산미 증식 계획, 1930년대 이후 민족 말살 통치와 전시 수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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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기 | 통치 방식 | 경제 수탈 | 교육·사회 |
|---|---|---|---|
| 1910년대 | 무단 통치 — 헌병 경찰, 조선 태형령, 교사도 제복과 칼 | 토지 조사 사업, 회사령(허가제) | 제1차 조선 교육령(보통학교 4년) |
| 1920년대 | 문화 통치 — 보통 경찰, 치안 유지법, 신문 발행 허용(검열) | 산미 증식 계획, 회사령 철폐(신고제) | 제2차 조선 교육령(보통학교 6년), 경성 제국 대학 |
| 1930년대–1945 | 민족 말살 통치 — 황국 신민 서사, 신사 참배, 창씨개명, 조선어 수업 폐지 | 병참 기지화, 국가 총동원법(징용·징병·공출), 일본군 "위안부" | 제3·4차 조선 교육령, 조선어 학회 사건 |
일제가 조선 총독부를 두고 헌병 경찰을 앞세워 한국을 다스렸다. 총독은 일본 육해군 대장 가운데서 임명되었다.
조선 총독부가 회사를 세울 때 총독의 허가를 받게 하는 회사령을 공포해 민족 자본의 성장을 막고, 어업령·삼림령·광업령으로 자원을 차지했다.
일제가 근대적 토지 소유권을 확정한다며 전국의 토지를 조사했다. 신고하지 않은 땅과 왕실·관청의 땅이 총독부 소유가 되었다.
조선 총독부가 "충량한 국민"을 기른다는 목적으로 제1차 조선 교육령을 공포했다. 보통학교를 4년으로 하고 일본어와 실업 교육 위주의 낮은 수준의 교육만 허용했다.
일제가 데라우치 총독 암살을 꾸몄다는 사건을 조작해 신민회 회원 등 600여 명을 잡아들였다. 1심에서 105명이 유죄를 받아 105인 사건이라 한다.
3·1 운동 뒤 새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문화 통치"를 내세웠다. 헌병 경찰을 보통 경찰로 바꾸고 한글 신문을 허가했지만, 실제로는 친일파를 길러 민족을 갈라놓으려 했다.
일제가 일본의 쌀 부족을 메우려고 한국에서 쌀 생산을 늘리는 계획을 세웠다. 늘어난 양보다 많은 쌀이 일본으로 실려 가 한국인의 식량 사정은 더 나빠졌다.
일제가 회사령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고(1920), 일본 상품에 매기던 관세를 대부분 없앴다(1923). 일본 자본과 상품이 밀려들어 민족 기업이 어려워졌다.
3·1 운동 뒤 일제가 제2차 조선 교육령을 공포했다. 보통학교를 6년으로 늘리고 조선어를 필수 과목으로 두었으며, 대학을 세울 수 있는 규정을 마련했다.
1923년 9월 1일 도쿄·요코하마 일대를 덮친 대지진과 화재로 10만여 명이 죽거나 사라졌다. 혼란 속에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가 퍼져 자경단과 군경이 많은 조선인을 학살했다.
일제가 국체를 바꾸거나 사유 재산 제도를 부정하는 단체를 처벌하는 치안 유지법을 한국에도 적용했다. 사회주의 운동과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도구가 되었다.
조선 총독부가 조선사 편수회를 두어 "조선사"를 펴내며 정체성론·타율성론·당파성론 같은 식민 사관을 퍼뜨려 식민 지배를 정당화했다.
스탈린 정권이 일본의 첩자가 될 수 있다는 구실로 연해주 등 소련 극동에 살던 고려인 17만여 명을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로 옮겼다.
일제가 침략 전쟁을 벌이며 군 위안소를 만들고 한국 등 여러 나라의 여성을 강제로 동원해 일본군 "위안부"로 삼았다. 여성들은 큰 고통과 인권 유린을 당했다.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내선일체"를 내걸고 한국인을 일왕에게 충성하는 "황국 신민"으로 만들려 했다. 황국 신민 서사 암송과 신사 참배, 궁성 요배를 강요했다.
일제가 국가 총동원법을 만들어 한국의 사람과 물자를 침략 전쟁에 마음대로 끌어다 썼다. 쌀과 놋그릇까지 거두어 가고 젊은이를 전쟁터와 공장으로 끌고 갔다.
일제가 한국인을 일본·사할린·남양 군도 등의 탄광·군수 공장·비행장 공사에 강제로 끌어가고, 전쟁 막바지에는 징병으로 전쟁터에 내보냈다.
일제가 한국인에게 일본식 성과 이름으로 바꾸게 했다. 따르지 않으면 학교 입학을 막고 식량 배급에서 빼는 등 불이익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