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경제와 사회
역분전에서 전시과·녹과전·과전법까지, 화폐와 벽란도, 구휼 기관, 무신 집권기의 농민·천민 봉기, 향도
이 테마는 한국사의 흐름을 지도로 익히도록 돕는 참고용입니다. 시험 범위·출제 경향과 다를 수 있으니, 실제 시험 준비는 교과서와 검증된 교재로 해 주세요.
역분전에서 전시과·녹과전·과전법까지, 화폐와 벽란도, 구휼 기관, 무신 집권기의 농민·천민 봉기, 향도
이 테마는 한국사의 흐름을 지도로 익히도록 돕는 참고용입니다. 시험 범위·출제 경향과 다를 수 있으니, 실제 시험 준비는 교과서와 검증된 교재로 해 주세요.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이 통일 전쟁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공로와 인품에 따라 땅을 나누어 주었다.
고려는 의창·상평창으로 곡식을 빌려주고 곡식값을 고르게 했으며, 제위보·동서 대비원·혜민국을 두어 가난한 사람과 병자를 구했다.
관리에게 등급에 따라 곡물을 거둘 땅(전지)과 땔감을 얻을 땅(시지)의 수조권을 나누어 주는 전시과를 만들었다.
성종 때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나라가 만든 금속 화폐인 철전 건원중보를 만들었다.
목종이 전시과를 고쳐 인품을 빼고 관품(관직의 등급)만으로 18과로 나누어 전·현직 관리에게 땅을 주었다.
예성강 어귀의 벽란도에 송·거란·여진·일본과 멀리 아라비아(대식국) 상인까지 드나들었다. 이때 "고려(Corea)"라는 이름이 서방에 알려졌다.
문종이 전시과를 다시 고쳐 현직 관리에게만 땅을 주고, 지급량을 줄이며 무관에 대한 차별을 줄였다.
의천의 건의로 숙종이 주전도감을 두고 은병(활구)과 해동통보 등 동전을 만들었다. 그러나 자급자족 경제라 널리 쓰이지 않았다.
공주 명학소의 망이·망소이가 소 주민에 대한 차별과 수탈에 맞서 봉기했다. 정부는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올려 달랬다.
운문(청도)의 김사미와 초전(울산)의 효심이 힘을 합쳐 경상도 일대에서 봉기했다. 무신 정권기 최대의 농민 봉기였다.
최충헌의 사노비 만적이 개경에서 노비들을 모아 신분 해방과 정권 탈취를 꾀했으나, 밀고로 실패했다.
전시과가 무너져 관리에게 녹봉을 주기 어려워지자, 원종이 경기 8현의 땅을 관리에게 녹과전으로 나누어 주었다.
원에 사신으로 갔던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왔고, 장인 정천익이 재배에 성공했다. 이후 무명옷이 널리 퍼져 백성의 옷차림이 크게 바뀌었다.
고려 말 1387년 사천에서 4,100여 명이 계를 맺어 향나무를 묻고 매향비를 세웠다. 매향을 함께한 신앙 조직 향도는 뒤에 마을 공동체 조직으로 바뀌었다.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가 권문세족의 농장을 없애고, 경기 지역의 토지에 한해 관리에게 수조권을 나누어 주는 과전법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