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시험 대비1904년 – 1910년23건

국권 피탈과 구국 운동

러일 전쟁과 한일 의정서, 을사늑약과 헤이그 특사, 정미 7조약과 군대 해산, 의병과 애국 계몽 운동, 국채 보상 운동, 국권 피탈

이 테마는 한국사의 흐름을 지도로 익히도록 돕는 참고용입니다. 시험 범위·출제 경향과 다를 수 있으니, 실제 시험 준비는 교과서와 검증된 교재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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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의 사건 23건

  1. 1904년 – 1905년러일 전쟁

    한반도와 만주를 두고 일본과 러시아가 싸웠다. 이긴 일본은 포츠머스 조약으로 한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2. 러일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서울을 점령한 채 한일 의정서를 강요했다. 일본은 전쟁에 필요한 한국 땅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3. 일본이 재정 고문 메가타와 외교 고문 스티븐스를 대한제국 정부에 들여보냈다. 고문의 동의 없이는 재정·외교를 처리할 수 없게 되었다(고문 정치).

  4. 러일 전쟁 중 일본이 독도를 "주인 없는 땅"이라며 "다케시마"로 이름 붙여 시마네현 고시로 몰래 편입했다. 한국 정부는 이를 불법 편입으로 본다.

  5. 재정 고문 메가타가 대한제국의 백동화와 상평통보를 일본 제일은행권으로 바꾸게 했다. 한국 상인과 민족 은행이 큰 타격을 입고 한국의 재정이 일본에 묶였다.

  6. 1905년 11월 17일, 이토 히로부미가 군대로 경운궁을 에워싸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조약을 강요했다. 통감부가 설치되어 내정까지 간섭했다.

  7. 장지연이 황성신문에 "이날을 목 놓아 통곡하노라"라는 논설을 실어 을사늑약을 강요한 일본과 이에 찬성한 대신들을 규탄했다.

  8. 시종무관장 민영환이 을사늑약의 파기를 요구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국민과 각국 공사에게 남기는 유서를 쓰고 자결했다.

  9. 1905년 – 1906년을사의병

    을사늑약에 반대해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민종식이 홍주성을 점령하고 최익현이 태인에서 일어났으며, 평민 의병장 신돌석이 동해안에서 활약했다.

  10. 1907년 – 1908년국채 보상 운동

    일본에 진 나랏빚 1,300만 원을 국민이 모은 돈으로 갚자는 운동이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졌다.

  11. 1907년 – 1911년신민회

    안창호·양기탁 등이 비밀 결사 신민회를 만들었다. 국권 회복과 공화정체의 근대 국가 수립을 목표로 교육·산업을 일으키고 국외 독립운동 기지를 세웠다.

  12.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의 제2회 만국 평화 회의에 이상설·이준·이위종을 보내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알리려 했다. 일본의 방해와 열강의 외면으로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13. 헤이그 특사를 구실로 일본과 친일 대신들이 고종을 압박해 황제 자리를 순종에게 넘기게 했다. 순종이 즉위해 연호를 융희로 바꾸었다.

  14. 고종을 물러나게 한 일본이 한일 신협약을 강요해 정부 각 부의 차관을 일본인으로 앉혔다(차관 정치). 비밀 각서로 대한제국 군대도 해산했다.

  15. 1907년 – 1909년정미의병

    고종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에 맞서 해산 군인이 합류한 의병이 전국에서 일어났다. 의병 전쟁으로 발전해 13도 창의군이 서울 진공 작전을 벌였다.

  16. 일본이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했다. 시위대 대대장 박승환이 자결하자 시위대가 남대문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웠고, 해산 군인들은 의병에 들어갔다.

  17. 전국의 의병 1만여 명이 양주에 모여 13도 창의군을 만들고 서울로 진격했다. 허위의 선발대가 동대문 밖 30리까지 나아갔으나 일본군에 밀려났다.

  18. 일본의 한국 지배를 옹호하던 외교 고문 스티븐스를 전명운·장인환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저격했다. 미주 한인 사회가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되었다.

  19. 신채호가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을 연재해 민족을 중심에 둔 역사 서술을 시작했다.

  20. 일본이 기유각서로 대한제국의 사법권과 감옥 사무를 빼앗았다. 이듬해 경찰권까지 빼앗고 나라를 병합했다.

  21. 외교권이 없는 대한제국을 빼고 일본이 청과 간도 협약을 맺어, 남만주 철도 부설권 등을 얻는 대가로 간도를 청의 땅으로 인정했다.

  22. 안중근이 만주 하얼빈역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죽였다. 뤼순 감옥에 갇혀 『동양 평화론』을 쓰다 이듬해 순국했다.

  23. 1910년 8월 29일,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했다. 8월 22일 강제로 맺은 병합 조약을 이날 공포했고, 35년의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다.

주요 인물

  • 고종1852년 – 1919년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첫 황제

  • 이토 히로부미1841년 – 1909년

    일본의 첫 총리대신.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초대 한국 통감이 되었다.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에게 저격당했다

  • 이완용1858년 – 1926년

    을사늑약에 찬성한 을사오적의 하나. 총리대신으로 한일 신협약·기유각서·병합 조약에 서명했다

  • 하야시 곤스케1860년 – 1939년

    주한 일본 공사. 한일 의정서·제1차 한일 협약·을사늑약에 일본 쪽으로 서명했다

  • 스티븐스1851년 – 1908년

    미국인 외교 고문. 제1차 한일 협약으로 대한제국 외교 고문이 되었고, 일본의 지배를 옹호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저격당했다

  • 헐버트1863년 – 1949년

    육영 공원의 미국인 교사. 한글 지리 교과서 "사민필지"를 썼고, 고종의 밀사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고 헤이그 특사를 도왔다

  • 신돌석1878년 – 1908년

    평민 출신 의병장. 을사의병 때 영해에서 일어나 경상·강원 동해안 산악 지대에서 싸워 "태백산 호랑이"로 불렸다

  • 양기탁1871년 – 1938년

    대한매일신보를 베델과 함께 펴냈고, 국채 보상 운동과 신민회를 이끌었다

  • 순종1874년 – 1926년

    대한제국 제2대이자 마지막 황제(연호 융희). 고종이 강제로 물러난 뒤 즉위했다

  • 이인영1868년 – 1909년

    13도 창의군의 총대장. 서울 진공 작전 중 부친상으로 고향에 돌아갔고, 뒤에 붙잡혀 처형되었다

  • 허위1854년 – 1908년

    13도 창의군의 군사장. 선발대를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까지 나아갔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처형되었다

  • 메가타 다네타로1853년 – 1926년

    제1차 한일 협약으로 대한제국 재정 고문이 된 일본 관료. 1905년 화폐 정리 사업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