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시험 대비681년 – 926년26건

통일 신라와 발해

신문왕의 체제 정비와 녹읍 폐지, 신라 하대의 혼란과 호족, 발해의 건국과 해동성국, 후삼국의 성립

이 테마는 한국사의 흐름을 지도로 익히도록 돕는 참고용입니다. 시험 범위·출제 경향과 다를 수 있으니, 실제 시험 준비는 교과서와 검증된 교재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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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의 사건 26건

  1. 신문왕이 즉위한 해에 장인 김흠돌이 반란을 꾀하다 처형되었다. 신문왕은 이를 계기로 진골 귀족을 숙청하고 왕권을 크게 강화했다.

  2. 신문왕이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세웠다. 유교 정치 이념을 익힌 관리를 길러 왕권을 뒷받침하려는 것이었다.

  3. 신문왕이 전국을 9주로 나누고 5소경을 두어 통일 신라의 지방 제도를 완성했다.

  4. 신문왕이 문무 관리에게 관료전을 차등 있게 나누어 주었다. 관료전에서는 조세만 거둘 수 있었다.

  5. 신문왕이 귀족 관리의 녹읍을 없애고, 대신 해마다 곡식(세조)을 나누어 주게 했다.

  6. 고구려 장수 출신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웠다. 뒤에 "해동성국"이라 불렸다.

  7. 성덕왕이 처음으로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했다.

  8. 발해 무왕이 일본에 처음 사신을 보냈다. 국서에서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고 부여의 풍속을 이었다고 밝혔다.

  9. 발해 무왕이 장문휴에게 수군을 주어 당의 산둥반도 등주를 치게 했다. 발해군은 등주 자사를 죽였다.

  10. 문왕이 당과 친선을 맺고 당의 제도를 받아들여 3성 6부의 중앙 관제를 갖추었다. 대흥이라는 연호를 쓰고 신라도를 열어 신라와 교류했다.

  11. 문왕이 도읍을 중경에서 상경 용천부로 옮겼다. 상경은 당의 장안성을 본떠 바둑판처럼 지은 도시다.

  12. 경덕왕이 관리의 월봉을 없애고 녹읍을 되살렸다. 같은 해 전국의 지명을, 뒤이어 관청·관직 이름을 중국식으로 고쳤다.

  13. 김지정의 반란 속에 혜공왕이 죽고, 반란을 진압한 김양상이 선덕왕으로 즉위했다. 무열왕 직계의 왕위가 끊기고 신라 하대가 시작되었다.

  14. 원성왕이 국학 학생의 유교 경전 이해 정도를 상·중·하품으로 나누어 관리 임용에 참고하게 했다.

  15. 선왕이 대부분의 말갈을 복속하고 요동으로 나아가 최대 영토를 이루고, 5경 15부 62주의 지방 제도를 갖추었다. 당은 발해를 해동성국이라 불렀다.

  16. 신라 말에 참선으로 깨달음을 얻는 선종이 9산 선문으로 퍼지고, 풍수지리설이 유행했다. 지방의 호족이 이를 사상적 바탕으로 삼아 성장했다.

  17.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아버지 김주원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내세워 반란을 일으키고, 나라 이름을 장안, 연호를 경운이라 했다.

  18. 장보고가 흥덕왕의 허락을 받아 완도에 청해진을 세웠다. 해적을 소탕하고 신라·당·일본을 잇는 바다 무역을 장악했다.

  19. 딸을 왕비로 들이려다 진골 귀족의 반대에 부딪힌 장보고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왕이 보낸 염장에게 암살되었다.

  20. 진성여왕 때 나라가 세금을 독촉하자 사벌주(상주)에서 원종과 애노가 봉기했다. 이를 시작으로 농민 봉기가 전국으로 번졌다.

  21. 6두품 출신 학자 최치원이 진성여왕에게 시무 10여 조를 올렸다. 개혁안은 받아들여졌으나 진골 귀족의 반발로 실현되지 못했다.

  22. 신라의 군인이던 견훤이 무진주(광주)를 차지한 뒤 900년 완산주(전주)에 도읍하고 후백제를 세웠다.

  23. 양길의 부하로 일어나 강원·경기·황해도를 차지한 궁예가 901년 송악에서 후고구려를 세웠다.

  24. 궁예의 장수 왕건이 수군을 이끌고 후백제 뒤쪽의 금성 등 10여 군현을 차지하고, 금성을 나주로 고쳤다.

  25. 궁예가 나라 이름을 마진으로 고치고(904) 도읍을 철원으로 옮긴(905) 뒤, 911년 다시 태봉으로 고쳤다.

  26. 거란의 야율아보기가 발해를 쳐서 도읍 홀한성(상경)을 에워쌌고, 마지막 왕 대인선이 항복했다.

주요 인물

  • 신문왕692년

    문무왕의 아들, 통일 신라의 제31대 왕. 김흠돌의 난을 누르고 국학·9주 5소경·관료전으로 왕권을 굳혔다

  • 궁예918년

    신라 왕족 출신이라 전하는 승려. 양길의 부하로 일어나 901년 송악에서 후고구려를 세우고, 마진·태봉으로 나라 이름을 바꾸었다. 미륵불을 자처하며 폭정을 하다 쫓겨났다

  • 무왕 대무예737년

    발해 제2대 왕. 인안이라는 연호를 쓰고 영토를 넓혔다. 장문휴를 보내 당의 등주를 쳤다

  • 문왕 대흠무793년

    발해 제3대 왕. 대흥 연호를 쓰고 당과 친선을 맺어 3성 6부의 제도를 갖추었다. 도읍을 상경으로 옮기고 신라도로 신라와 교류했다

  • 원성왕798년

    신라 제38대 왕 김경신. 독서삼품과를 두어 유교 경전 실력으로 관리를 뽑으려 했다

  • 장보고846년

    당의 무령군 소장 출신. 완도에 청해진을 세워 해적을 소탕하고 신라·당·일본을 잇는 바다 무역을 장악했다

  • 진성여왕897년

    신라 제51대 왕, 신라의 세 번째 여왕. 세금 독촉에 원종·애노의 난 등 농민 봉기가 전국에서 일어났다

  • 양길

    신라 말 북원(원주)에서 일어난 세력가. 궁예를 부하로 거느렸으나 뒤에 궁예에게 졌다

  • 태조 왕건877년 – 943년

    송악의 호족 출신. 궁예 밑에서 나주를 차지하는 등 공을 세웠고, 918년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웠다. 935–936년 후삼국을 통일했다

  • 김흠돌681년

    신문왕의 장인. 신문왕이 즉위한 해에 반란을 꾀하다 죽임을 당했다

  • 설총

    원효의 아들. 이두를 정리해 유교 경전을 우리말로 풀이했고, 신문왕에게 화왕계를 지어 바쳤다

  • 강수

    신라의 6두품 유학자. 외교 문서를 잘 지어 무열왕·문무왕의 외교를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