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의 변천
북위 양식의 고구려 금동불과 "백제의 미소"에서 석굴암 본존불, 발해의 이불병좌상, 고려 초의 철불과 지방색 짙은 거대 석불까지

북위 양식의 고구려 금동불과 "백제의 미소"에서 석굴암 본존불, 발해의 이불병좌상, 고려 초의 철불과 지방색 짙은 거대 석불까지

| 불상 | 시대·나라 | 재료·형식 | 특징 |
|---|---|---|---|
| 연가 7년명 금동 여래 입상 | 고구려 539 무렵 | 금동 입상 | 북위 양식. 고구려 글이 있으나 의령(신라 땅)에서 발견 |
|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 | 백제 6세기 말~7세기 초 | 마애불(바위에 새김) | "백제의 미소". 중국 가는 바닷길 길목 |
|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 삼국 6세기 후반~7세기 전반 | 금동 반가 사유상 | 미륵 신앙. 일본 고류지 목조상과 닮음 |
| 경주 배리 석불 입상 | 신라 7세기 전반 | 석조 삼존 입상 | 어린아이 같은 얼굴과 미소 |
| 석굴암 본존불 | 통일 신라 경덕왕 751 | 석조 좌상(인공 석굴) | 항마촉지인, 이상적 비례. 세계 유산 |
| 이불병좌상 | 발해 8~9세기 | 두 부처가 나란히 앉음 | 고구려 양식 계승 — 발해의 고구려 계승 |
| 하남 하사창동 철조 석가여래 좌상 | 고려 초 10세기 | 철불 좌상 | 석굴암 양식 계승. 신라 말~고려 초 철불 유행 |
|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 고려 광종 968~1006 | 거대 석불 | "은진 미륵". 큰 머리, 지방 특색 |
| 영주 부석사 소조 여래 좌상 | 고려 | 소조(흙) 좌상 | 가장 오래된 소조불. 무량수전 서쪽에서 동쪽을 봄 |
| 안동 이천동 마애 여래 입상 | 고려 | 마애불 + 따로 얹은 머리 | "제비원 석불". 거대 불상, 지방 특색 |
광배 뒷면에 "연가 7년 기미년"에 고구려 낙랑의 절에서 만들었다는 글이 있는 고구려 불상. 신라 땅이던 경남 의령에서 발견되었다.
한쪽 다리를 다른 다리 무릎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삼국 시대의 금동 보살상. 국보 두 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충남 서산의 바위에 새긴 백제의 불상. 가운데 여래의 넉넉하고 온화한 웃음 때문에 "백제의 미소"라 불린다.
경주 남산 서쪽 기슭의 신라 석불 삼존. 어린아이 같은 둥근 얼굴과 부드러운 미소가 삼국 시대 신라 불상의 특징을 보여 준다.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이 토함산에 불국사와 석굴암을 짓기 시작했다. 통일 신라 불교 예술의 정수로 꼽힌다.
두 부처가 나란히 앉은 발해의 불상. 고구려 불상의 전통을 이은 것으로 보아,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보여 주는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경기도 하남의 절터에 있던 높이 2.8m의 고려 초 철불. 석굴암 본존불의 양식을 이었으며, 신라 말~고려 초에 유행한 철불의 대표다.
광종 때(968) 짓기 시작해 1006년 완성한 높이 18m의 거대 석불. "은진 미륵"으로 불리며, 고려 초 지방의 독특한 불상 양식을 대표한다.
부석사 무량수전에 모신 흙으로 빚은 고려의 불상. 남아 있는 소조 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되었으며, 통일 신라 불상의 양식을 이었다.
큰 바위에 몸을 새기고 머리는 따로 만들어 얹은 고려의 거대 불상. "제비원 석불"로 불리며, 고려 시대 지방의 특색 있는 불상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