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시험 대비1911년 – 1944년24건

사회·경제·문화 운동

물산 장려·민립 대학 설립 운동, 소작 쟁의와 노동 쟁의, 형평·소년·여성 운동, 6·10 만세 운동·신간회·광주 학생 항일 운동, 국학 연구와 한글 운동

이 테마는 한국사의 흐름을 지도로 익히도록 돕는 참고용입니다. 시험 범위·출제 경향과 다를 수 있으니, 실제 시험 준비는 교과서와 검증된 교재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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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의 사건 24건

  1. 1911년 – 1945년종교계의 민족 운동

    천도교·대종교·불교·천주교·원불교·개신교 등 종교계가 계몽 운동, 무장 투쟁, 생활 개선 운동, 신사 참배 거부로 민족 운동에 나섰다.

  2. 박은식이 상하이에서 "한국통사"를 펴내 개항 이후 일제의 침략 과정을 밝혔다. 민족의 "혼"을 지키면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고 했다.

  3. 1920년 – 1923년물산 장려 운동

    조만식 등이 평양에서 조선 물산 장려회를 만들어 우리 손으로 만든 물건을 쓰자는 운동을 벌였다. 1923년 서울에서 전국 조직이 생겨 널리 퍼졌다.

  4. 1922년 – 1924년민립 대학 설립 운동

    이상재 등이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를 만들어 한국인 손으로 대학을 세우려고 모금 운동을 벌였다. 일제의 방해로 실패했다.

  5. 1923년 – 1935년형평 운동

    백정들이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를 만들어 신분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대우를 받으려는 형평 운동을 벌였다.

  6. 방정환 등 천도교 소년회와 색동회가 어린이를 한 인격으로 대하자는 소년 운동을 벌였다. 1923년 5월 1일 조선 소년 운동 협회가 어린이날 기념식을 열고, 잡지 "어린이"를 펴냈다.

  7. 1923년 – 1924년암태도 소작 쟁의

    전남 신안 암태도의 소작인들이 1년 가까이 싸워 지주 문재철에게서 소작료를 7~8할에서 4할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8. 전국의 청년 단체들이 조선 청년 총동맹으로 모였다.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아 청년 운동이 민족 운동·사회 운동과 이어졌다.

  9. 서울에서 조선 공산당이 비밀리에 결성되었으나, 그해 11월 신의주 사건으로 드러나 치안 유지법에 따라 많은 당원이 붙잡혔다.

  10. 순종의 장례일에 학생들이 격문을 뿌리고 만세 시위를 벌였다.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이 손잡는 계기가 되었다.

  11. 나운규가 각본·감독·주연을 맡은 무성 영화 "아리랑"이 단성사에서 개봉해 큰 인기를 얻었다. 식민지 민중의 울분을 담은 한국 영화의 대표작이다.

  12. 3·1 운동 민족 대표였던 승려 한용운이 시집 "님의 침묵"을 펴냈다. 잃어버린 "님"을 기다리는 노래로 민족의 독립 의지를 담았다.

  13. 1927년 – 1931년신간회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손잡고 신간회를 만들었다. 일제 강점기 최대의 합법적 민족 운동 단체였다.

  14. 1927년 – 1931년근우회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들이 신간회의 자매단체로 근우회를 만들었다. 여성 차별 철폐와 여성의 단결을 내걸고 전국에 지회를 두었다.

  15. 원산의 노동자들이 일본인 감독의 한국인 노동자 폭행에 맞서 4개월 가까이 총파업을 벌였다. 1920년대 최대의 노동 쟁의다.

  16. 1929년 – 1930년광주 학생 항일 운동

    광주에서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의 충돌을 계기로 일어난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다. 3·1 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 운동이다.

  17. 1931년 – 1934년브나로드 운동

    동아일보가 방학 때 학생들을 농촌에 보내 한글을 가르치고 미신 타파·생활 개선을 알리는 브나로드 운동을 벌였다.

  18. 신채호가 쓴 "조선상고사"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보고 고대사의 주체성을 강조했다.

  19. 조선어 연구회를 이은 조선어 학회가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를 정하고 우리말 사전 편찬을 준비했다.

  20. 이병도·손진태 등이 진단 학회를 만들어 "진단 학보"를 내며 문헌 고증에 바탕한 실증 사학을 폈다. 같은 무렵 정인보·안재홍의 조선학 운동, 백남운의 사회 경제 사학이 나왔다.

  21.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사진을 실으며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가 가슴의 일장기를 지웠다. 총독부는 동아일보를 무기 정간하고 기자들을 잡아들였다.

  22. 1446년 간행한 "훈민정음" 해례본이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되어, 한글을 만든 원리가 처음 밝혀졌다.

  23. 1942년 – 1945년조선어 학회 사건

    일제가 조선어 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로 몰아 회원들을 잡아 가두었다. 이윤재·한징이 옥중에서 숨지고 학회는 해산되었다.

  24. 일제 말 민족 말살 정책 속에서도 저항시를 쓴 이육사가 1944년 베이징의 감옥에서, 윤동주가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졌다.

주요 인물

  • 한용운1879년 – 1944년

    승려·시인. 민족 대표 33인으로 기미 독립 선언서에 서명했다. 시집 "님의 침묵"

  • 손병희1861년 – 1922년

    동학 제3대 교주, 천도교를 세웠다. 3·1 운동 민족 대표 33인의 대표

  • 방정환1899년 – 1931년

    아동 문학가·소년 운동가. 천도교 소년회와 색동회를 이끌고 어린이날과 잡지 "어린이"를 만들었다

  • 이상재1850년 – 1927년

    독립 협회에서 활동했다. 민립 대학 기성회를 이끌고 신간회 초대 회장이 되었다

  • 안재홍1891년 – 1965년

    신간회 총무간사. 정인보 등과 조선학 운동을 폈고, 광복 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 최현배1894년 – 1970년

    조선어 학회의 국어학자. "우리말본"·"한글갈"을 썼고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광복 때까지 옥살이를 했다

  • 나철1863년 – 1916년

    을사늑약 뒤 오기호와 을사오적 암살을 꾀했다. 1909년 단군을 받드는 대종교를 열었다

  • 박중빈1891년 – 1943년

    소태산. 1916년 원불교를 열고 간척·저축 조합과 새생활 운동을 이끌었다

  • 박은식1859년 – 1925년

    민족주의 사학자.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썼고 임시 정부 제2대 대통령이 되었다

  • 조만식1883년 – 1950년

    평양에서 조선 물산 장려회를 만들어 물산 장려 운동을 이끌었다

  • 순종1874년 – 1926년

    대한제국 제2대이자 마지막 황제(연호 융희). 고종이 강제로 물러난 뒤 즉위했다

  • 나운규1902년 – 1937년

    영화인. 무성 영화 "아리랑"(1926)의 각본·감독·주연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