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성립과 정치 변동
후삼국 통일과 태조·광종·성종의 체제 정비, 문벌 귀족 사회의 동요, 무신 정권, 원 간섭기와 공민왕의 개혁, 고려의 멸망
이 테마는 한국사의 흐름을 지도로 익히도록 돕는 참고용입니다. 시험 범위·출제 경향과 다를 수 있으니, 실제 시험 준비는 교과서와 검증된 교재로 해 주세요.
후삼국 통일과 태조·광종·성종의 체제 정비, 문벌 귀족 사회의 동요, 무신 정권, 원 간섭기와 공민왕의 개혁, 고려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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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 등이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왕으로 추대했다. 왕건은 나라 이름을 고려, 연호를 천수라 했다.
견훤이 경주를 습격해 경애왕을 죽게 하자 왕건이 신라를 구하러 나섰으나, 공산 동수에서 후백제군에게 크게 졌다. 신숭겸이 왕건 대신 전사했다.
왕건이 고창(안동)에서 견훤의 후백제군을 크게 무찔렀다. 이 싸움으로 후삼국의 주도권이 고려로 넘어왔다.
신라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고, 이듬해 고려가 후백제를 무너뜨려 후삼국을 통일했다.
왕건은 호족을 끌어안으면서 견제하는 정책과 북진 정책을 펴고, 죽기 전 후대 왕들에게 훈요 10조를 남겼다.
고려 제3대 왕 정종이 거란의 침입에 대비해 광군 30만을 조직하고, 이를 지휘하는 광군사를 두었다.
광종이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를 실시하고 칭제건원해, 호족과 공신을 누르고 왕권을 굳혔다.
광종이 전쟁 포로나 빚 때문에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조사해 양인으로 되돌렸다.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로 광종이 과거를 처음 실시해, 유교 지식을 갖춘 관리를 시험으로 뽑았다.
최승로가 성종에게 앞선 다섯 왕의 정치를 평가한 글(5조 정적평)과 함께, 유교 정치의 방향을 담은 시무 28조를 올렸다.
성종이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2성 6부의 중앙 제도와 12목을 갖추고, 국자감을 세웠다.
고려는 중앙군으로 2군 6위를, 지방군으로 5도의 주현군과 양계의 주진군을 두었다.
현종 때 4도호부 8목을 중심으로 지방 제도를 고치고 개경 둘레에 경기를 두었다. 이후 일반 행정 구역인 5도와 국경의 군사 행정 구역인 양계가 갖추어졌다.
인종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인 이자겸이 척준경과 함께 궁궐을 불태우고 왕을 가두었다. 인종이 척준경을 회유해 이자겸을 몰아냈다.
서경 세력인 묘청·정지상이 서경 천도와 칭제건원·금국 정벌을 주장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서경에서 난을 일으켰다. 김부식이 이끈 관군에 1년 만에 진압되었다.
문신에게 차별받던 정중부·이의방·이고 등 무신이 보현원에서 정변을 일으켜 문신을 죽이고 의종을 몰아냈다. 이후 100년 동안 무신 정권이 이어졌다.
무신 정권에 맞서 1173년 동북면의 김보당이 의종 복위를, 1174년 서경 유수 조위총이 무신 타도를 내걸고 군사를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최충헌이 이의민을 죽이고 권력을 잡아, 4대 60여 년에 걸친 최씨 무신 정권을 열었다. 교정도감을 최고 권력 기구로 삼았다.
개경 환도 뒤 80여 년 동안 고려는 원의 부마국이 되어 내정 간섭을 받았다. 관제가 격하되고 영토 일부를 빼앗겼으며, 친원 세력인 권문세족이 권력을 잡았다.
원이 일본 원정을 위해 고려에 정동행성을 두었다. 원정이 끝난 뒤에도 남아 고려의 내정에 간섭하는 기구가 되었다.
원·명 교체기에 공민왕이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쌍성총관부를 되찾는 반원 개혁과, 신돈을 앞세워 권문세족을 누르는 왕권 강화 개혁을 펼쳤다.
공민왕이 유인우 등을 보내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99년 만에 철령 이북의 땅을 되찾았다. 이자춘·이성계 부자가 안에서 호응했다.
공민왕이 등용한 신돈이 전민변정도감을 두어,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주인에게 돌려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양인으로 풀어 주었다.
명이 철령 이북의 땅을 내놓으라 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 정벌을 일으켰으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최영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았다.
고려를 지키며 새 왕조 개창에 반대한 온건파 사대부 정몽주가 개경 선죽교에서 이방원 일파에게 죽었다. 석 달 뒤 이성계가 왕위에 올랐다.

후주에서 고려로 귀화한 관리. 광종에게 과거제 실시를 건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