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시험 대비1863년 – 1882년21건

흥선 대원군과 개항

흥선 대원군의 개혁과 통상 수교 거부, 병인·신미양요, 강화도 조약과 불평등 조약, 수신사·조사 시찰단·영선사, 위정척사 운동

이 테마는 한국사의 흐름을 지도로 익히도록 돕는 참고용입니다. 시험 범위·출제 경향과 다를 수 있으니, 실제 시험 준비는 교과서와 검증된 교재로 해 주세요.

지도에서 보기

지도로 보는 테마

OpenFreeMap © OpenMapTiles © OpenStreetMap contributors

테마의 사건 21건

  1. 1863년 – 1873년흥선대원군의 개혁

    고종이 열두 살에 즉위하자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실권을 잡고 세도 정치의 폐단을 고쳤다. 왕권을 세우고 민생을 안정시키려 했다.

  2. 1865년 – 1868년경복궁 중건

    흥선대원군이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270여 년 만에 다시 지었다. 비용을 대려고 원납전을 걷고 당백전을 찍어 원성을 샀다.

  3. 1866년 – 1871년병인박해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를 크게 탄압해 프랑스 선교사 9명과 신자 수천 명을 처형했다. 병인양요의 구실이 되었다.

  4.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온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통상을 요구하며 약탈하자,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가 관민과 함께 배를 불태웠다.

  5. 천주교 박해를 구실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점령했다. 양헌수가 정족산성에서 물리쳤고, 프랑스군은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 물러났다.

  6.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비용을 마련하려고 상평통보의 100배 가치로 쓰게 한 당백전을 찍어 물가가 크게 올랐다.

  7. 통상을 거절당한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파헤치려다 실패했다. 통상 수교 거부가 더 굳어졌다.

  8. 1870년 – 1879년개화사상의 형성

    박규수·오경석·유홍기 등이 북학파 실학을 잇고 청을 거쳐 들어온 서양 사정을 받아들여, 문호를 열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자는 개화사상을 폈다. 이들에게 배운 김옥균·박영효·유길준 등이 개화파가 되었다.

  9.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서원 가운데 47곳만 남기고 모두 없앴다. 앞서 1865년에는 노론의 상징인 만동묘를 철폐했다.

  10.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따지러 온 미국 함대가 강화도를 공격했다. 광성보에서 어재연이 전사했고, 흥선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웠다.

  11. 신미양요 뒤 흥선대원군이 서울 종로와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워 서양과 통상하지 않겠다는 뜻을 널리 알렸다.

  12. 흥선 대원군이 군포를 사람(장정)이 아니라 집(호) 단위로 매겨, 양반도 군포를 내게 하는 호포제를 실시했다.

  13.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 초지진에 다가와 포격을 주고받고 영종도에 상륙해 약탈했다. 일본은 이를 구실로 강화도 조약을 강요했다.

  14. 1876년 음력 2월 3일(양력 2월 27일) 조선이 일본과 맺은 첫 근대 조약. 부산 등 세 항구를 열었고 불평등 조항이 담겼다.

  15. 강화도 조약 뒤 김기수가 수신사로 일본에 가 메이지 일본의 근대 시설을 둘러보았다. 『일동기유』에 견문을 남겼다.

  16. 수신사 김홍집이 일본에서 청 외교관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가져왔다. 러시아를 막으려면 청·일본·미국과 손잡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17. 『조선책략』이 퍼지자 이만손을 소두로 한 영남 유생 만여 명이 개화 정책과 미국 수교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18. 박정양·어윤중·홍영식 등이 일본에 몰래 건너가 정부 기관과 산업 시설을 살폈다. 유길준은 남아 일본에서 유학했다.

  19. 정부가 개화 정책을 맡을 통리기무아문을 두고(1880), 일본인 교관이 훈련하는 신식 군대 별기군을 만들었다(1881).

  20. 김윤식이 유학생과 기술자를 이끌고 청 톈진의 기기국에서 무기 만드는 법을 배웠다. 돌아와 1883년 서울에 근대 무기 공장 기기창을 세웠다.

  21. 조선이 서양 나라와 처음 맺은 조약. 청의 주선으로 제물포에서 미국과 맺었고, 치외 법권과 최혜국 대우가 들어갔다.

주요 인물

  • 흥선대원군1820년 – 1898년

    고종의 아버지. 섭정으로 경복궁을 다시 짓고 통상 수교를 거부했다

  • 고종1852년 – 1919년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첫 황제

  • 박규수1807년 – 1877년

    박지원의 손자. 평안도 관찰사로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웠고, 뒤에 통상 개화를 주장해 개화파의 스승이 되었다

  • 홍영식1855년 – 1884년

    급진 개화파. 우정총국 총판으로,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정변이 실패하자 죽임을 당했다

  • 유길준1856년 – 1914년

    조사 시찰단·보빙사를 따라가 일본·미국에서 공부했다. 서양 견문을 적은 "서유견문"을 쓰고 갑오·을미개혁에 참여했다

  • 신헌1810년 – 1884년

    강화도 조약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맺은 조선의 대표

  • 황준헌1848년 – 1905년

    일본 주재 청 공사관의 참찬관. 『조선책략』을 지어 2차 수신사 김홍집에게 건넸다

  • 최익현1833년 – 1907년

    위정척사파 유생. 흥선대원군의 하야를 이끌어 낸 상소, 개항 반대 5불가소를 올렸고, 을사늑약 뒤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쓰시마에서 죽었다

  • 베르뇌1814년 – 1866년

    프랑스 파리 외방 전교회 주교. 조선 천주교회를 이끌다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처형되었다

  • 양헌수1816년 – 1888년

    병인양요 때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친 장수

  • 로즈1812년 – 1883년

    프랑스 극동 함대 사령관.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공했다

  • 오페르트1832년 – 1903년

    독일 상인. 통상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1868년 남연군 묘를 도굴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