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시험 대비1419년 – 1659년24건

대외 관계와 양난

사대교린과 4군 6진·쓰시마 정벌, 삼포왜란·을묘왜변, 임진왜란과 의병·수군, 광해군의 중립 외교, 정묘·병자호란과 북벌

이 테마는 한국사의 흐름을 지도로 익히도록 돕는 참고용입니다. 시험 범위·출제 경향과 다를 수 있으니, 실제 시험 준비는 교과서와 검증된 교재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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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의 사건 24건

  1. 왜구의 근거지를 치려고 이종무가 병선 200여 척으로 쓰시마를 공격했다. 뒤에 계해약조로 교역을 허락했다.

  2. 1433년 – 1449년4군 6진 개척

    최윤덕이 압록강 상류에 4군을, 김종서가 두만강 하류에 6진을 두어 오늘날 국경선의 바탕을 만들었다.

  3. 세종 때 쓰시마 도주와 약조를 맺어 일본과의 교역을 세견선 1년 50척, 세사미두 200석으로 제한했다.

  4. 부산포·제포·염포에 살던 일본인들이 쓰시마의 도움을 받아 난을 일으켰다. 진압 뒤 교역이 크게 줄었다.

  5. 왜구가 배 70여 척으로 전라도 달량포에 쳐들어와 영암·장흥 등을 휩쓸었다. 이를 계기로 비변사가 상설 기구가 되었다.

  6. 1592년 – 1598년임진왜란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시작되어 1598년까지 이어진 7년 전쟁. 명나라가 원군을 보내 동아시아 국제전으로 번졌다.

  7. 전쟁이 시작되고 열흘쯤 뒤 곽재우가 경상도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각지에서 의병이 잇달아 일어났다.

  8. 이순신이 견내량의 일본 수군을 한산도 앞바다로 끌어내 학익진으로 크게 이겼다. 일본군의 서해 보급로가 막혔다.

  9. 진주 목사 김시민이 3천여 명으로 일본군 2만여 명의 공격을 엿새 동안 막아 냈다. 김시민은 이때 입은 상처로 숨졌다.

  10.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3만 명이 넘는 일본군의 공격을 물리쳤다. 백성들도 돌을 날라 싸움을 도왔다.

  11. 임진왜란 중 류성룡의 건의로 포수·사수·살수의 삼수병을 기르는 훈련도감을 두었다. 급료를 받는 상비군이었다.

  12. 1597년 – 1598년정유재란

    강화 협상이 깨지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다시 군대를 보냈다. 이듬해 히데요시가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13. 다시 수군을 맡은 이순신이 남은 13척으로 울돌목의 거센 물살을 이용해 일본 수군 130여 척을 물리쳤다.

  14. 물러나는 일본 수군을 조선·명 연합 수군이 노량에서 막아 크게 이겼다. 이순신은 이 싸움에서 전사했다.

  15. 1607년 – 1811년조선 통신사

    임진왜란 뒤 조선이 에도 막부에 보낸 외교 사절.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열두 차례 일본에 가서 국교와 문화 교류를 이었다.

  16. 임진왜란 뒤 조선이 쓰시마와 기유약조를 맺어 일본과의 교역을 다시 열었다. 부산포 한 곳만 열고 세견선을 20척으로 제한했다.

  17. 명의 요청으로 강홍립이 이끄는 조선군을 후금 정벌에 보냈으나, 사르후 전투에서 명군이 크게 지자 강홍립은 후금에 항복했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을 지켰다.

  18. 1619년 누르하치의 후금이 네 길로 쳐들어온 명군과 강홍립의 조선군을 사르후 일대에서 차례로 무찔렀다. 이 싸움으로 명과 후금의 형세가 뒤바뀌었다.

  19. 서인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능양군을 왕으로 세웠다(인조). 친명배금으로 돌아서며 후금과의 관계가 나빠졌다.

  20. 인조반정의 공신 이괄이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평안도에서 난을 일으켜 한양을 점령했다. 인조는 공주로 피란했다.

  21. 1624년 – 1626년광주 남한산성

    인조 때 도성 남쪽을 지키려고 고쳐 쌓은 산성. 병자호란 때 인조가 47일 동안 버틴 곳으로, 2014년 세계 유산이 되었다.

  22. 후금이 3만 군으로 쳐들어왔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란했고,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고 전쟁을 끝냈다.

  23. 1636년 – 1637년병자호란

    청나라가 조선을 침입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버티다 삼전도에서 항복했다.

  24. 1649년 – 1659년효종의 북벌 추진

    청에 볼모로 잡혀갔던 효종이 즉위하자 어영청을 키우고 송시열·이완 등을 등용해 청을 치려는 북벌을 준비했다. 효종이 죽자 중단되었다.

주요 인물

  • 인조1595년 – 1649년

    조선 제16대 왕. 반정으로 즉위했고, 정묘·병자 두 호란을 겪고 삼전도에서 항복했다

  • 이순신1545년 – 1598년

    조선 수군을 이끈 장수. 옥포·한산도·명량에서 이겼다

  • 세종1397년 – 1450년

    조선 제4대 왕. 훈민정음을 만들고 과학 기구와 북방 개척을 이끌었다

  • 광해군1575년 – 1641년

    조선 제15대 왕. 대동법을 시작하고 명·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폈으나 인조반정으로 쫓겨났다

  • 선조1552년 – 1608년

    조선 제14대 왕. 의주까지 피란하며 명나라에 원군을 청했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년 – 1598년

    일본을 통일하고 조선 침략을 일으켰다

  • 류성룡1542년 – 1607년

    서애. 임진왜란 때 영의정·도체찰사로 전쟁을 이끌고 훈련도감 설치를 건의했다. 징비록을 지었다

  • 강홍립1560년 – 1627년

    광해군 때 명의 요청으로 후금 정벌에 나선 조선군의 도원수. 사르후 전투에서 명군이 패하자 후금에 항복했다

  • 최명길1586년 – 1647년

    인조반정에 공을 세운 서인. 병자호란 때 청과 화의를 맺자는 주화론을 이끌었다. 양명학에도 밝았다

  • 홍타이지1592년 – 1643년

    후금의 칸, 뒤에 청 태종. 두 차례 조선을 침공했다

  • 이종무1360년 – 1425년

    조선 초의 장수. 1419년 쓰시마 정벌군을 이끌었다

  • 태종 이방원1367년 – 1422년

    조선 제3대 왕. 두 차례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잡고 왕권을 다졌다